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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열면 젠더가 보인다!
작성자 황진아 등록일 2018-01-16 조회수 554

[한겨레] [ESC] 너 어디까지 해봤어?

새해 꼭 봐야 할 젠더 이슈 책 목록

자녀교육서, 모녀·부자 관계 등 13권 추천

성소수자·남자다움에 짓눌린 남성 얘기 등 다채

성의 역사, 경제학·진화심리학으로 본 책도 



“성폭력은 감기처럼 이 사회에 만연하게 퍼져 있지만 가해자들은 많이 드러나지 않곤 합니다.” 배우 정려원의 2017년 <한국방송>(KBS) 연기대상 최우수상 수상 소감이다. 제작진과 가족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 이슈, 그중에서도 젠더 이슈가 수상 소감으로 등장했다. 그렇게 시작된 2018년, 한국 사회에서는 젠더 이슈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아직도? 당연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를 못 낸 당신을 위한 젠더 이슈 관련 독서 리스트를 소개한다. 자녀교육, 모녀/부자 관계, 성소수자, 남성성, 섹스, 사회라는 키워드로 책을 분류했다. 



지금까지 당신이 성장한 세계와는 다른, 현재와 미래에서 자라고 관계 맺고 일할 자녀를 위한 젠더 교육서를 가장 먼저 소개한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아이를 페미니스트로 키우는 열다섯 가지 방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손바닥만한 핸드북이다. 아이를 낳은 친구의 요청에 따라 쓴 열다섯 통의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젠더 교육은 물론 ‘부모 되기’에 대한 사려 깊은 고민을 나누고 있기도 하다.

아이를 대할 때의 첫번째 전제는 무엇이어야 할까? “나는 중요하다. 나도 똑같이 중요하다.” 젠더 이슈의 중요성은 지금까지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긍정하고 행복해지게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젠더자문관으로 일하는 김고연주 박사가 쓴 <나의 첫 젠더 수업>은 ‘젠더’라는 말 자체가 낯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기 좋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결코 본질적이거나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배운다는 것은 취향과 취미, 문과와 이과 진로부터 결혼과 취업에까지 영향을 끼친다. ‘극혐’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된 시대에 별생각 없이 쓰는 유행어가 어떤 생각에서 기인하는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다룬 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위로부터 오는 관계든 아래로 이어지는 관계든 세대 문제는 인류의 기원 때부터 존재했을 골칫거리지만, 같은 성별의 가족 이야기로 오면 문제의 양상이 달라진다. 특히 어머니와 딸이라는, 가정 내에서 억압받는 두 주체가 상호작용하며 경험하는 문제는 앞으로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어머니와 딸의 갈등은 사랑과 배려에서 시작하며, 심리적 밀착도가 다른 이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에 아주 늦게야 문제를 겨우 인식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일본의 정신과 전문의 사이토 다마키의 <엄마는 딸의 인생을 지배한다>와 <나는 엄마가 힘들다>, 전자는 모녀문제의 개론서 형식이고 후자는 <종이달>의 가쿠타 미쓰요를 비롯한 유명 문인들이 자신이 어려움을 겪은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 인터뷰집이다. 소설가 필립 로스의 산문 <아버지의 유산>은 아버지와 사별하는 과정을 경험한 노년에 접어든 아들의 목소리다. 세계관을 대물림하는 공간이 바로 가정이므로 필립 로스의 소설이 지닌 미국 백인 지식인 남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여자 식구가 없이 아버지와 아들만이 서로를 의식하는 말년의 시간을 담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2017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대만에서 동성혼이 법제화되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유튜버로 활동하는 애슐리 마델의 LGBT+ 첫걸음 >은 그 첫걸음을 도와주는 입문서다. 여성성이나 남성성에 제한을 두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정체화한다는 말의 뜻을 배운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또한 많은 이들에게는 타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알려준다. 헌법학 교수인 켄지 요시노의 <커버링>은 법과 사회에 의해 꾸준히 정체성과 권리를 부정당하는 성소수자의 민권을 다룬다. 성소수자에 대해 안다는 것이 결국 한 사회의 차별을 없애는 기초 작업이 된다.



젠더 이슈는 비단 여성이나 성소수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남성을 위한 책도 다수 출간되었다. 특히 ‘남자다움’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어떻게 남성을 제약하는지를 다룬 사회운동가 토니 포터의 <맨박스>는 특히 읽어볼 만한데, 그의 테드(TED) 강연 ‘어 콜 투 멘’(A Call To Men. 남자들에게 고함)을 보는 것도 추천한다. 남성들은 남자다움을 집단적으로 배워왔다. 제목 ‘맨박스’는 남자를 둘러싼 고정관념의 틀을 의미한다. 터프하고 거친 남성으로 행동할 때 다른 남성들에게 인정받고, 고통과 상처, 두려움을 호소할 때는 남성답지 못하다는 시선 아래 놓이는 일에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때가 되었다는 단호한 선언이기도 하다. 평범하고 선한 남성일수록 사회가 원하는 ‘맨박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맨박스>는 맨박스가 주는 결속감에서 벗어날 때 맺을 수 있는 다른 이들과의 원만한 관계가 무엇일지 남성의 관점에서 숙고한 결과물이다. 철학자 모리오카 마사히로의 <남자도 모르는 남성에 대하여>는 “남자를 일반화하지 말라”는 불만을 가진 남성 독자를 위한 젠더 이야기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남성성이 공론화되기 어려운 문제를 지적하며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남성의 목소리로 포르노, 자위를 비롯한 이슈를 다루고 있다. 남성들이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이번에는 섹슈얼리티를 다룬 책들을 만날 차례다. <만화로 보는 성의 역사>는 유럽을 중심으로 한 역사를 섹스를 통해 재구성한 만화책이다. 파리 제5대학교에서 성과학을 가르치는 필리프 브르노가 쓰고 만화가이자 애니메이터인 레티시아 코랭이 그린 이 책은 현대인들이 자연스럽게 금기시하는 성과 관련된 규율이 ‘처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님을 역사 속 장면들을 통해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으로 고대의 성풍속이 있다. 그리스인들은 동성애자도 이성애자도 아니었다. 그들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이성애자를 구별하지 않았고, 이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런 용어는 19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여성 혐오가 강했던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는 오로지 지배 관계만이 중요했다. 책의 중반부는 ‘만화로 보는 성 풍속사’ 같은 인상인데, 성교육과 포르노에 관한 통계, 그리고 다양한 금기와 성적 지향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은 성교육 시간에 결코 배울 일이 없었던 섹스 이야기를 담았다. 저널리스트인 페기 오렌스타인은 15살에서 20살 사이의 미국 젊은 여성 70명을 심층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성경험과 그 안에서 겪게 되는 곤경, 폭력적 문화를 생생하게 담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시대에, 지적 능력뿐 아니라 육체적 섹시함까지 여성의 ‘능력’으로 생각하는 시대에 필요한 성교육은 무엇일까. 성폭력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미디어와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이미지만으로 성에 대해 교육받는 일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시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경제학과 진화심리학이라는 도구로 젠더 이슈를 다룬 책을 소개한다.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는 저널리스트 카트리네 마르살이 쓴, 경제학이 눈감고 지나친 여성의 가사노동을 비롯해 경제학이 여성을 무시해온 다양한 실례를 역사 속에서 찾아 보여준다. 누가 밥을 하는가부터 남녀 임금은 왜 불평등한가까지, 풍부한 자료와 적절한 유머를 통해 보여준다. 영문학자 마리 루티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이른바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갈등은 당연하다는, 널리 퍼진 진화심리학적 편견을 꼬집는다.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에 질문하기, 젠더에 대한 인식은 바로 그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다혜(작가, 에세이스트) 

 기사입력 2018-01-03 20:05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8&aid=0002393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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