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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테크 리더 김정운 교수고려대학교 심리학과 졸베를린 자유대학교 심리학과 석사, 박사(문화심리학)베를린 자유대학교 심리학과 전임강사현 명지대학교 기록과학대학원 여가정보학과 주임교수현 명지대학교 여가문화연구센터 소장현 명지대학교 상담실장현 한국여가문화학회 총무이사현 한국여성심리학회 이사저서: 문화의 심리학(독, 2003), 휴테크성공학(명진출판사, 2003) 21세기를 들어서며 남과 다르게 생각하는 창의적 사고에 대한 각종 주장이 난무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창의적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친절한 경우는 거의 없다. 생각의 틀을 깨자고 맨땅에 헤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은 알지만 도대체 어떻게 생각을 바꾸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한다. 지식기반사회, 정보화 사회라는 21세기에는 그 자체로 새로운 지식이나 새로운 정보는 없다. 대신 기존의 정보와 지식을 어떤 맥락에 제시하느냐에 따라 진부한 것과 새로운 것으로 나뉘어 진다. 정보와 정보의 제시되는 맥락을 이해해야 창의적인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창의력은 우리의 일상의 맥락을 깨면 생긴다. 편견을 벗어나기만 해도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필요한 창의성이란 누구나 알고 있는 정보를 엮어 새로운 맥락에 제시하는 능력이다. 마치 아이들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레고블럭을 가지고 비행기도 만들고 배도 만드는 것처럼 아주 단순한 정보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엮이면 아주 창의적인 내용을 담게 된다. 기존의 진부한 정보들을 새롭게 엮어내는 방법을 창의력 연구가 미칼코는 '다빈치 기법'이라고 명명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얼굴의 각 부분을 나누고 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합하는 방식으로 사람의 얼굴을 그렸다. 즉 다양한 형태의 머리, 눈, 코, 입 등을 나열한 후 이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합하면, ‘둥근 머리모양에 찢어진 눈, 매부리코, 퉁퉁한 입을 가진 사람’과 같은 방식의 수없이 많은 얼굴들을 창조해 낼 수 있게 된다. 진부하고 단순한 각각의 정보가 다양하게 엮여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정보는 새롭게 조합되고, 맥락이 달라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어떻게 이런 낡은 정보를 새롭게 조직화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아주 간단하다. 잘 놀면 된다. 재미있게 놀 생각을 하면 저절로 창의적이 된다. 일할 때의 사물과 놀 때의 사물은 그 의미가 다르다. 40세의 창의력은 5살짜리 아동의 창의력의 4퍼센트에 불과하다. 주어진 일만 생각하는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은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놀이는 익숙한 것을 아주 낯설게 한다. 생활 속에 아무런 의미 없던 물건도 놀다 보면 아주 새로운 가치를 부여 받는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 정보의 맥락을 바꾸고 새로운 정보들의 관계를 만드는 것은 익숙한 것이 낯설게 보여야만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잘 놀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남들과 똑 같이 노는 것은 잘 노는 것이 아니다. 머리에 모두 똑같이 노란 물 들이고 다 똑 같은 춤을 추는 것은 잘 노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남들과 다르게 놀아야 한다. 나만의 특별한 놀이가 있어야 한다. 남들과 구별되는 나만의 놀이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세상을 앞서간다. 이전에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었다. 그러나 21세기는 다르다. 나는 놈 위에 노는 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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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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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na Martin인도주의적 국제의료구호단체 “국경없는 의사회와 나의 이야기”국경없는 의사회 헌장- MSF는 가난과 자연재해나 인재, 전쟁 등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인종이나 종교, 정치적 신념에 관계없이 차별하지 않고 돕는다.- MSF는, 보편적 의료윤리 내에서 누구나 인도적인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으므로,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중립성과 공평성을 유지하며, 그 기능을 행사하는 데 필요한 완전한 자유를 요구한다.- MSF회원들은 직업윤리를 지키며,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영향력으로부터도 완전한 독립성을 유지한다.- MSF회원들은 수행하는 임무의 위험성을 인지하며, MSF가 제공할 수 있는 것 외에 어떠한 보상을 요구할 권리도 갖지 않는다.제2강좌인도주의적 국제의료구호단체 Anna Martin“국경없는 의사회와 나의 이야기”아나 마틴 (Anna Martin) Profile 프랑스 베상송(Besan on)에서 1973년에 태어났다. 파리V대학에서 임상심리학과 비교문화학을 복수전공하여, 1998년에 DESS(Diploma of Superior Specialized Studies) 학위를 받았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프랑스 국내에서뿐 아니라 슬로베니아, 아르메니아, 불가리아 등지에서 정신장애인을 돕는 사업에 자원봉사자로서 참여해 왔다. 특히 재해나 전쟁, AIDS 등 위기상황에 처하여 정신적 외상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심리적 구호활동에 뜻을 두고, Association for the Population in Precariousness(APRAE : 위기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협회), Center for Victims of Torture and Political Repression (프랑스 내 코소보 난민가족을 위한 센터), AIDS 환자를 위한 병원 등의 기관에서 활동을 하였다. 2002년부터 (M dicins Sans Fronti res)의 심리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사무소에서 재직 중이다. 논문으로“Transmission of the Psycho-Trauma in the Yugoslavian Refugee Families in France (프랑스의 유고슬라비아 난민가족의 정신적 외상의 전이현상)”이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 (M decins Sans Fronti res)’란?국경없는 의사회는 인도주의적 국제의료구호단체로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인종이나 종교, 신념, 정치적 영향력에 구애받지 않고 긴급 의료지원을 차별 없이 제공해왔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전세계 80여개 국가에서 활동 중이며 고통 받는 사람들 및 자연재해 또는 인재, 교전, 전염병 등의 피해자, 사회적 또는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고립되어D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 등을 대상으로 의료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을 통해 분쟁지역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고통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팀들은 현지 의료권위자나 전문가들과 협력하여 일차적 치료 및 수술제공, 병원 또는 의원을 재건하기도 하며, 영양 또는 위생관리에 대한 기획운영, 현지 의료진교육, 정신치료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장기적 프로그램을 통해 결핵이나 말라리아, 수면병(sleeping sickness), 에이즈 등의 만성질환 및 거리의 아이들과 같은 소외된 사람들의 의학적, 심리학적 문제 등을 다루며, 교육 및 물자가 제한된 고립된 지역에 의료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1968년 당시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내전에 파견된 프랑스 적십자사 소속 베르나르 쿠시네(Bernard Kouchner)를 비롯한 몇몇의 프랑스인 의사와 언론인 12명이 1971년 파리에서‘중립공평’의 원칙으로 시작되었다. 1972년 지진이 발생한 니카라과에서의 구호활동을 시초로 1975년 베트남전쟁, 1990년 걸프전 중 60대의 전세기로 현장에 출입하며 7개소의 난민 캠프를 설치하여 7만여명의 난민을 구호하기도 하였다. 이라크의 화학무기살포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1995년 르완다에서의 양민대학살 사건을 폭로하였다. 소말리아, 보스니아, 나이지리아, 콩고, 에티오피아, 코소보, 동티모르 등 전쟁, 재해 지역 등과 1999년에 사상 최대의 지진피해를 입은 터키와 타이완 등지에서 의료활동을 벌였다. 현재 전세계 18개국 지부 및 80여개의 국가에서 2,500이 넘는 자원봉사자들과 15,000이 넘는 현지직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구호 활동에 있어서의 타협이나 외부 개입을 방지하기 위해 그 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중립성과 독립성을 유지한다. 이를 위해 개인기부금을 가장 우선적인 자금원으로 여기지만, 경우에 따라 재단 또는 정부, 국제기구로부터 지원받기도 한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1991년‘유럽 인권상’과 미국 필라델피아시가 수여하는‘자유의 메달’을 수상하였고, 1997년에는 북한에서 구호활동을 벌인 공로로 서울특별시가 제정한‘서울평화상’을 수상하였다. 1999년에는 세계 각지의 분쟁, 참사 지역에 신속히 들어가 구호활동을 펼침으로써 인도주의를 실현하고 일반 대중의 관심을 촉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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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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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총장 박재윤 박사 Profile 1941년 7월 25일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서 태어났다. 조부(고 박인화)는 울산 농소면에서 오랜 기간 서당 훈장을 하였고 부친(고 박위갑)은 40여년간 초등학교 교육에 헌신하였다. 부친을 따라 장안(부산), 양사(울산), 금정(부산), 고성(경남 고성)초등학교를 다녔고, 고성, 창녕(경남 창녕)중학교를 거쳐 부산고등학교(부산)를 졸업하였으며, 1963년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2년간 ROTC 장교로 군복무를 하였고, 1967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이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서 4년간 조교 생활을 하였다. 1971년 1월 동 대학에서 전임강사로 임용된 뒤 동년 8월 미국 유학의 길에 올라 미국 인디애나대학교(Indiana University)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1975년 1월 경제학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1992년 10월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서 조교수, 부교수, 교수를 지냈으며, 그동안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서울대학교 기획실장을 맡았고, 1987년 ~ 1990년까지 금융통화운영위원을 지냈으며, 한국금융학회와 한국금융연구원을 창립하여 각각 초대 회장과 초대 원장을 맡았었다.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김영삼 대통령후보의 경제특보를 맡았고, 이후 1993년 2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1994년 10월부터 12월까지 재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재무부가 경제기획원에 통합됨에 따라 통상산업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겨 1996년 12월까지 통상, 산업, 자원정책을 총괄했었다. 1998년까지 금융통화운영위원을 다시 맡았고 1998년 3월부터 1999년 8월까지 순천향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1999년 9월부터 2003년 8월까지 부산대학교 총장을 맡아 부산대학교를“환태평양권 핵심역랑대학”으로 도약시키기 위해 진력했다. 서울대학교 교수 재직 시 펴낸, 화폐금융원론(박영사, 1979년)은 현대적 화폐금융이론을 우리나라에 도입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고, 그 밖에 한국노동시장에 관한 연구.(한국경제연구소, 1978년), .경쟁과 협력의 조화.(통상산업부, 1997년), .국제화시대의 대학혁신.(부산대학교출판부, 2003년) 등의 저서가 있으며, 경제이론, 화폐이론, 금융경제학, 경제정책 분야의 논문이 다수 있고, 현재는 \'지식기반사회와 대학\'이라는 저서를 집필 중에 있다. 1975년 미국 인디애나대학교로부터Henry M. Oliver Economic Theory Award를 수상했고, 1997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부인 김화자 여사(60)와의 사이에 딸 수현(34, 남편 양홍석)과 아들 수혁(32)을 두고 있으며, 모친 변선희 여사(87)를 모시고 있다. 아래의 글에서 보는 바와 같이“최선을 다하고 감사하는 것”을 삶의 철학으로 하고 있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의 살아가는 원칙이다. 그것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일이든 혹은 순전히 나 자신만에 관련되는 일이든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 하는 것이 버릇처럼 되어 있다. 어떤 일이 꼭 성사가 되느냐, 안 되느냐 하는 것보다도 그 일에 최선을 다 했는가 그렇지 못 했는가를 나는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면, 성사가 되지 않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또 하나 나의 습관이 있다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나는 그것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행복한 일이 닥쳤을 때에는 물론이고,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그것은 나의 능력을 길러 주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감사하게 받아 들여서 최선을 다하기로 하는 것이다. 사실 잘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우리가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참으로 많은 것이다."( .대학문화신문., 1999년 11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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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박성숙
- 작성일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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