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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9학년도_입상_[해(解):기호와 사유]_이상신 교수

  • 박지원
  • 2020-02-24
  • 3885
학점이 아닌, 지식을 채우는 수업 (국어국문학과 최수림)

   아주대학교 인문대학 소속 학과의 학생들은 3학기에 걸쳐 ‘문: 삶과 꿈’, ‘사: 시대와 정신’, ‘해: 기호와 사유’라는 클라시쿠스 강의를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그 중에서도 ‘해(解) : 기호와 사유’는 ‘문’, ‘사’ 과목을 들어야만 들을 수 있는, 클라시쿠스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강의라고 할 수있다.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 강의는 언어와 관련된 고전, 철학적 사유를 맛볼 수 있는 텍스트를 읽으며 언어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한다. 즉, ‘해’를 포함한 모든 클라시쿠스 강의는 인문학도로서 갖추어야 할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이렇게 ‘따뜻한’ 과목의 목적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학생들은 ‘차가운’ 평가를 내린다. 나 역시, 그러한 학생들 중 한 명이었다. 
  한 손으로 들기도 힘든 두꺼운 양의 고전책을 한 학기에 1-2권을 다루고, 중간 시험과 중간 중간 쏟아지는 책 퀴즈, 책 요약문, 조별 책 요약 발표와 토론, 마지막으로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5장 이상의 소논문까지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문’과 ‘사’ 과목에서 그 과정들을 1 년 동안 겪었기에, ‘해’ 강의는 더욱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내가 ‘해’ 과목을 듣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 이 강의를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수강을 마친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본고에서는 어떠한 이유로 강의에 대한 생각이 변했을까, 이 강의만이 갖는 매력이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내가 추천하고자 하는 이 강의는 학점을 쉽게 딸 수 있는 강의도 아니며, 수업 시간이 널널한 것도 아니며, 공부할 분량이 적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럼에도 ‘다시 듣고 싶은 명강의’로 추천할 수 있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바로 ‘사고의 폭의 향상’이다. 그리고 이제 사고의 폭 향상으로 이어지는 ‘해’ 강의의 일련의 과정들을 상세히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본 강의 초반에서는 ‘훈민정음언해’를 통해 한글 창제 원리와 이해, 한글 창제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 수 있었다. ‘언어’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해’ 과목에서 근본적인 우리말을 먼저 다루는 것은 강의 목적에도 적합하였고, 다음으로 배울 책을 이해하기에도 도움이 되었다. 국어학’을 전공하신 교수님께 ‘훈민정음언해’를 배우니 고등학교 때 배웠던 지식과는 다르게, 한층 더 깊이 있는 ‘한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태극기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은 태극기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그린 태극기가 정답이라고 쉽게 확신하지는 못했다. 이에 교수님께서는 태극기를 보여주시고는 태극기 속에 담긴 음양오행의 원리를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나서 훈민정음 속 음양오행의 원리를 들으니 한층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처음 훈민정음언해본을 마주했을 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국어가 섞여 있어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흥미로운 예시와 교수님의 탁월한 전달력으로 어려운 내용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훈민정음언해본을 바탕으로 중간 시험을 치른 후에는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동시에 조별로 진행하는 발표와 토론 수업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모두 열심히 본인이 맡은 부분에 대해 성실히 조사하고 발표를 진행하였으나, 책 자체가 어려운 내용이라 그런지 완벽히 책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치만, 교수님께서 발표자들이 빼먹은 내용과 추가적인 설명을 중간에 계속 덧붙여주셨기에 어려운 책이 비교적 쉽게 다가올 수 있었다. 이전에 들었던 발표와 토론 수업에서는 수업 시간 내내 학생들의 발표만 이어졌던 적이 많아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상신 교수님의 ‘해’ 수업은 그렇지 않았다. 학생들의 목소리에 항상 귀 기울이시는 모습에 감동하여 발표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더욱 열심히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우리 조의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어려운 책 내용 중에서도 특히 어려웠던 부분의 발표를 맡아 부담도 크고 힘이 들었다. 책이 직역되어 읽어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 오탈자들, 처음 보는 개념이 많아 책을 한번 읽어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을 넘길 때마다 쏟아지는 처음 보는 단어들에 적잖이 당황하였는데, 발표 준비가 더 어려웠던 이유는 그 단어들을 검색해도 충분한 자료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책에서 등장한 데리다의 ‘해체론’이라는 개념을 설명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처음 발표를 진행했을 때에는 사전적인 정의 정도만 언급할 수 있는 정도였다. 이에 교수님께서는 ‘구조주의’ 개념을 엮어 설명을 해주시며, 더 조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해주셨다. 교수님께서 알려주신 개념을 토대로 찾을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찾아 공부하였고, 개념 하나를 공부하는데 약 4시간이 소요됐을 정도로 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은 욕심은 커졌다. 
  교수님의 연구실에 찾아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에는 그 욕심이 더 커졌던 것 같다. 이해한 내용을 토대로 교수님께 설명을 드리자, 교수님께서 이해하신 내용을 덧붙여주셨다. 여기서도 물론 교수님의 친절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 받았으나, 이 개념에 대해 잘 알고 계시는 다른 교수님께 여쭤보며 답변을 받았다고 하시는 교수님께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사실 ‘해’ 수업은 담당하시는 교수님들께서도 힘들고, 어쩌면 번거로울 수 있는 수업일텐데, 책에 등장하는 작은 개념 하나까지 신경써주시는 모습에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와 강의가 모두 끝난 지금, 그 개념을 완벽히 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것만은 단언할 수 있다. ‘해’ 수업은 그동안 들었던 모든 강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의다. 또한, 책 내용을 요약과 검토하기만 했던 지난 강의들과는 다르게, 본 수업에서는 ‘마음에 드는 부분’과 그 이유를 써서 제출하였다. 처음에는 ‘마음에 드는 부분’이란 주관적인 영역이라 채점하기가 어려울텐데, 왜 이 부분을 쓰라고 하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수업을 듣는 학생의 입장에서 솔직하게 말하면, ‘요약과 검토’보다 ‘마음에 드는 부분’이 훨씬 쓰기 쉬워서 좋았다. 그렇게 처음에는 그저 쓰기 편하다는 이유로 마냥 좋았다. 그러나 점점 읽으면서 내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어디인지 생각하게 되고, 이유를 들다 보니, 재미없고 어려웠던 책이 점점 기억에 남고, 재미있어지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의 드는 부분’을 작성했던 장들의 내용을 특히 흥미롭게 느낄 수 있었다.
  4학기 동안 많다고 하면, 많은 수업들을 들었다.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수업을 생각해보면, ‘배움의 즐거움을 느꼈는가?’ 보다는 ‘학점을 잘 받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이 흔히 부르는 ‘꿀강의’라는 것에 집착하며, 학점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런 수업에서 배운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비교적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것들에 목매어 단기적으로 기억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解) : 기호와 사유처럼 어려운 수업을 포기하지 않고 수강해보니 남는 것들이 많았다. ‘훈민정음언해본’을 배우며 알게 된 지식들로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에 등장하는 오류를 찾을 수 있었고, ‘구술문화와 문자문화’라는 책에서 배운 내용을 토대로 다른 수업 내용과의 연관성을 포착하기도 했다. 예컨대, ‘김삿갓’이라는 방랑시인에 대해 공부하며, ‘방랑시인의 시가 어떻게 널리 알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해’ 수업에서 배운 ‘구술성’의 특징으로 풀 수 있었다. 
  만약 ‘해’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생각을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해’ 수업은 인문학적 사고의 폭을 향상시켜주었다. 또한 새로운 지식을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이 얼마나 오래 기억되는가는 더 중요한 요소이다. 나에게 ‘해’ 강의는 인문학적인 지식을 주기도 했지만, 교수님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수업이었고, 단순히 학점만 잘 채우는 것이 좋은 수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수업이다. 한 학기 동안, 수업의 내용이 어렵고 힘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준 것만으로도 나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강의였다. 배움의 즐거움과 지적 성장의 장(場)이었던 ‘해(解) : 기호와 사유’ 강의를 해주신 이상신 교수님께 이 에세이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