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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고 싶은 나의 교수님

2017학년도_우수_[경영학과]_조영호 교수

  • 박민경
  • 2018-02-05
  • 8447
 제목: 365일 중 이틀
 ‘함께 하고 싶다’에서 ‘함께’가 언제까지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얼마나 자주 함께여야 하는지도 역시 모르겠다. 4년을 아주대에서 보냈다. 영화에 나오는 은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삶을 바꿔줄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같이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은 아무리 좋은 얘기를 들어도 하룻밤만 지나면 까먹어버린다. 또 얘기를 들은 후에도 행동의 변화가 없으니 말짱 도루묵이다. 어쩔 수 없다. 그래도 마지막 학기에 함께 하고 싶은 교수님 한 분을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걸로 위안을 삼으려한다. 조 영 호 교수님은 내게 있어 일 년에 많으면 두 번 정도 안부를 나누고 싶은 분이다. 함께의 기간이 언제까지인지 영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조영호교수님은 내게 그런 분이다. ‘저 잘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어요.’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은 분. 생각보다 거창한 함께가 아니라 시시할 수도 있지만 내겐 충분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 번. 365일 중 이틀. 뜬금없이 안부를 물어도 자연스레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에서만 가능한 숫자라 생각한다. 교수님과 그런 관계가 되고 싶다.
 나는 어느 정도 인생을 포기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스물하고 세 살. 대학에서 스물에다가 셋이나 넷을 더하면 나이가 많게 느껴진다. 인터넷에도 그러지 않나, ‘13학번이면 화석이다, 암모나이트다, 13학번이 아직도 숨 쉬고 있나요…….’ 대학에서만 존재하는 나이계산법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인생이 어느 정도는 정해져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결코 억만장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갈 것이며, 그 쥐꼬리만 한 돈 역시 학자금 대출, 월세, 휴대폰 비 등등으로 빠져나갈 것이다. 또 어쩌다 결혼을 한다면, 나와 결혼을 하게 된 사람(무던하고 덤덤하지만 강단 있고 감성적인)과 결국에는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내 삶의 3/4를 받쳐야겠지. 어쩌면 전부를. 어떤가? 말 그대로 정해져있는 인생이다. 여기서 더 바꿀 수도 없다. 어쩌면 부모님 등골을 쪽쪽 빨아먹는 인간으로 끝날 수도 있다. 지금 내가 그러고 있는 것처럼. 인생이 다 결정되어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두려웠다. 정말로 엄마아빠 고생만 시키면 어쩌지. 인간을 창조한 신이라 불리는 자가 나를 가리키며 ‘얘들아 잘 봐. 저렇게 살면 안 된다.’라고 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들이 늘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아주 웃기는 일이다. 포기했다고 말하면서도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 학기에 어떤 수업을 들을까하다 친구가 듣는 수업을 따라 들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갔다. 리더십과 기업가 정신에서 조영호 교수님을 만났다. 처음엔 별 생각 없었다. 그냥 강의 시작과 끝맺음 때 박수를 치는 아주 조오오오금 유쾌한 교수님이라고 생각했다. 교수님은 이따금씩 수업시간에 평가자의 리더 적합성을 확인해볼 수 있는 설문지를 가져오셨다. 최대한 솔직하게 설문에 임했다. 결과는? 당연히 리더의 자격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놀랍지 않았다.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교수님 눈에는 내가 본 나와는 좀 다르게 보셨나보다. 11월 2일, 갑자기 교수님께서 얘기를 나누자고 하셨다. 사실 이 날 지각을 해 엄청나게 혼나는 줄 알았다. 변명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교수님의 내게 건넨 말은 예상 밖의 말이었다. 교수님께서 그 말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넌 가능성이 많은 아이인데 그걸 모르는 것 같다.”라고 하셨다. 아마도 난 이 말을 힘들 때마다 꺼내볼 것 같다. 아무리 기억력이 안 좋은 사람이라도 쉽게 잊을 수 없는 말이다. 내가 갈 수 있는 길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기분이 좋았다. 어떤 가능성을 보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도 잘 모르겠다. 어찌 되었던 그 때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를 얘기를 나눴다. 처음엔 아주 간단했다. “30살이 되면 뭘 하고 싶니?”에서 시작했다. 나는 “서울에 방 두 칸이나 한 칸 그리고 화장실 하나 있는 방에서 고양이를 키우고 살고 싶어요. 아니면 맥주를 마시면서 빔 프로젝트로 영화를 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목표를 세웠으니 그 다음은 과정에 대한 얘기였다. 여러 가지 얘기가 오갔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취업. 취업밖에 없었다. 친구들이 취준(취업준비)으로 힘들어할 때 난 내년부터 하면 된다고 피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취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내가 인사담당자라도 날 안 뽑을 것 같았다. 이에 관해 교수님과 계속해서 얘기를 나눴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무엇을 하라고 말하기 보다는 나 스스로 묻고 답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내가 “취업을 해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하면 교수님께서는 “그럼 취업을 하려면 뭘 해야 할까?”라고 물으셨다. 그럼 난 또 거기에 대한 답을 했다. 교수님께서는 답을 재촉하지 않으셨다. 그저 내가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셨다. 내가 찾은 답은 이렇다. 그냥 일단 해볼 것.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 해볼 것. 그래서 자소서(자기소개서)를 써보기로 했다. 교수님은 어떤 기업이던 상관없이 써보라고 하셨다. 일주일의 시간을 줄 테니 딱 하나만 완성해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써봤다. 대외활동 자소서는 어떻게든 썼던 것 같은데 취업을 위한 자소서를 쓰려니 너무 어려웠다. 대략 3일 정도는 노트북만 켜놓았다. 쓸 말이 없었다. 그래도 교수님과 한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왠지 모를 책임감이 들었다. 교수님과 만나는 날 조금 긴장했다. 자소서를 너무 못 써서 부끄러웠다. 그런데 교수님은 자소서를 보시지 않고 항목에 대해 물어보셨다. 그리고 어떻게 쓰면 좋을 것인지에 대해 나와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셨다. 질문이 무엇을 물어보는지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수정을 하고 제출할 수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쓴 자소서였다. 막상 제출하니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너무 어려워했다. 혹시나 궁금해 할 사람이 있어서 말하는데 내 첫 자소서는 서류에서부터 탈락했다. 비록 탈락했지만 좌절하지 않고 다음 자소서를 계속해서 써나갔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자소서를 쓰면서 교수님이 말하셨던 많은 가능성 중 하나를 찾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부끄러워 말할 수 없지만 그리고 솔직히 긴가민가하지만 찾았다는 것에 만족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내 일은 내가 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교수님께서 생각할 시간을 주시지 않았다면 찾을 수 없었을 것이다.
 교수님과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학교를 걸을 때 기분이 이상했다. 끔찍하기도 했고 빨리 졸업해버리고 싶었는데 막상 끝이라 생각하니 묘했다. 조금 더 멋있는 끝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내가 이 학교를 떠난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학교가 이제 끝이니 나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난 쫓겨났다. 구질구질하게 매달릴 수도 없으니 새로운 곳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교수님께 이미 말했지만 대화하는 과정에서 과한 솔직함과 호기심으로 예의 없게 행동했던 것 다시 한 번 죄송하다고 말하고 싶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던 나를 조금은 생각하고 말하도록 바꿔주셨다. 그리고 말을 행동으로 바꾸는 과정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하다. 묵묵히 나를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 여전히 난 부족한 게 많다. 그리고 여전히 내 삶은 큰 틀은 정해져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큰 틀 사이사이의 공간에 무언가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졸업을 하면 언제 다시 교수님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원래 사람을 찾지 않으니까. 그리고 교수님 또한 굳이 나를 찾을 이유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내게 아주 작더라도 좋은 소식이 있다면 연락을 해볼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조 영 호 교수님은 나의 카카오톡에 몇 없는 친구 중 한 명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