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칼럼] 쫓고쫓기는 관계 vs 라이벌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쫓기는 자와 쫓는 자 중에서 어떤 사람이 더 마음이 편할까. 쫓기는 자가 더 힘들 것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은 둘 다 힘들다.
텍사스A&M 대학 심리학과 다렐 워티 교수는 대학원생 시절 기발한 연구를 생각해 냈다. 그와 연구진은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프로농구의 모든 경기에서 점수 차가 1점 이내인 박빙의 승부를 골라냈다. 그리고 경기종료까지 1분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선수들이 시도한 자유투의 성공률을 분석했다.
그 결과는 흥미롭다. 자신의 팀이 1점을 이기고 있을 때나 지고 있을 때 모두, 선수들은 자신의 시즌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자유투 성공률을 보였다. 하지만 동점인 상황에서는 선수들이 자신의 시즌 평균보다 오히려 더 높은 자유투 성공률을 기록했다.
축구의 승부차기에서도 먼저 차는 쪽이 더 많이 이긴다는 통계가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먼저 차는 쪽은 그 시작점이 `동점`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못할 확률이 줄어들지만, 나중에 차는 쪽은 쫓는 쪽일 가능성이 커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나.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과 따라잡히면 안 된다는 불안 모두 `성취의 마음`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개인이나 조직이 `득점`과 같이 적극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일을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쫓고 쫓기는 상황이라고 인식된 상황에서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바로 `앞으로 나아가 이기겠다는 마음`보다는 `잡히거나 잡지 못해 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해 더 큰 압박감을 받는 것이다. 이 두 마음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든 조직이든 경쟁을 해야 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리더나 CEO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 평소에 무언가를 다져 놓기도 하고 긴급한 상황에서 구성원들의 관점을 바꿔주기도 한다. 그 핵심은 `심리적인 동점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쫓고 쫓기는 압박감을 덜어내고 승부에 집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동점 상황이 늘 팽팽하게 지속되는 관계를 우린 `라이벌`이라고 부른다. 서로 발전시키는 더없이 좋은 관계다.
`A사는 더 이상 우리 회사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거나 `기필코 B사를 따라잡고 말 겁니다`라는 선도자 혹은 추격자의 언어를 쓰는 분들을 많이 본다. 하지만 이런 표현이 일상화되면 치명적인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오히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을 나보다 더 낫거나 못하다고 판단하는 순간 쫓거나 쫓기는 관계를 스스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와 나의 조직 이외에는 모두 라이벌들이다.
즉 우리보다 더 잘나거나 못난 것이 아닌 호적수인 셈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내가 더 발전하고 또 승리한다. 이것이 좋은 CEO, 훌륭한 감독, 그리고 지혜로운 리더가 할 일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매일경제 201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