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도_입상_[법학과]_장정애교수
제목: 이모와 조카들과 함께했던 평생 간직하고 싶은 시간
꽉 채운 4년의 휴학기간동안, 사법시험 등 수험생활에 실패를 거듭해서 자괴감을 가진 상태로 복학했다. 유난히도 쓸쓸한 가을날에, 낙엽을 보며 커피한잔 마시고 수업에 참석했다. 오랜만에 학교 수업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미모의 교수님이 수업에 들어오셔서 점심식사 후에 있는 수업이 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아주대 법과대학에는 여자교수님이 거의 없으시기 때문에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교수님께서 첫 수업을 시작하시자마자, 온화한 미소를 띠시며 무거운 주제를 꺼내셨다. 우리 법과대학은 09학번부터 신입생을 받지 않아 남아있는 학생들이 적어, 이 수업에는 6명이 수강했다. 그리고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나이는 28살부터 30살까지의 학생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교수님께서는 학생들에게 ‘고해성사’를 시키셨다. 특히 우리에게 왜 아직까지 학교에 남아있는지물어보셨다. 한 사람, 한 사람 번갈아가며 자기의 ‘아픈 손가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다른 학생들보다 조금 더 상세하게 얘기했다. 주로 사법시험과 국정원시험에 낙방한 이야기, 현재 경찰시험에 준비하는 것과 심리상태 등을 말했다. 서먹한 학우들 앞에서 부끄러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려웠지만, 끝내고 보니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 휴학기간의 삶이 정리가 되었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
교수님께서도 아나운서, 사법시험 준비와 같은 힘들었던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셨고, 우리들에게 늦지 않았다고 위로해주셨다. 교수님의 응원이 긴 실패기간으로 인해 자존감이 낮아져 있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이 마음을 지속시키기 위해, 책상 앞에 ‘태경아 할 수 있어. 힘을 내자!’라는 나에 대한 지지 글귀를 포스트잇으로 붙였다.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교수님께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셨다. 이런 경험이 없었는지 혹은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지, 나를 포함한 학생들이 대답을 못하고 넘어갔다. 다음 수업에도 물어보셨는데, 학우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혼자서 며칠 동안, 진지하게 그 질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다. ‘언제 감사하고 있는가?’, ‘평소에도 감사하고 있는가?’ 자문해봤다. 나는 거의 감사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왜 감사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상대적 감사’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작금의 내 상황이 대체로 친구들에 비해 어렵기 때문에, 감사할 내용이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 감사’라고 해도 비교대상에 따라 다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시리아의 환경에 비하면 매우 감사할 수 있었다. 그리고 편한 집, 행복한 가정과 공부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을 볼 때 ‘절대적 감사’의 내용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감사노트’를 만들어 감사의 내용들을 하나, 둘 써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감사할 것들이 많아서, 한 페이지를 작성하는데 짧은 시간이 걸렸다. 하루를 마치거나 평소에도 가끔씩 쓰고 있는데,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되어 쓰길 잘했다고 생각이 든다.
수업 중간에, 교수님께서는 근황에 대해 물어보곤 하셨다. 한 학우가 폭행사건에 연관되어 있다고 말했다. 교수님께서는 좋은 경청자로서 들어주셨고, 걱정해주셨다. 이어서 아들을 가진 어머니로서, 우리들에게 싸웠던 경험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렸을 때의 경험들을 떠올리며 대답했고, 나도 기억을 되살려 초등학교 때 싸웠던 이야기를 했다. 교수님께서 경청해주시니, 나도 모르게 그 때의 사건들을 자세히 말하고 있었다. 나의 초등학생 6학년 때 싸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친구들 간에 오해가 생겨, 나는 혼자 지내는 것을 선택했다. 그 이후에 사람들을 믿지 못하기 시작했고, 어린 나이지만 목숨을 끊는 것까지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아픔이었는데, 교수님과 학우들이 있는 열린 공간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나 자신에 놀랐다. 말하고 난 후, 후련했고 치유되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픔도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교수님께 감사했다.
마지막 수업시간이 아쉬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교수님과 오래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생들끼리 많이 가까워지진 않았지만, 분위기만큼은 가족과 같은 분위기였다. 교수님께서는 도미노피자를 사주시면서 앞으로의 삶에 당부와 로스쿨 등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우리들에게 더 나은 꿈을 갖도록 조언해주셨다. 나이가 차서 먹고살기 위해서만 집중을 했지만, 직업의 그 너머를 보게 되었다.
우리 학우들은 내 주도하에 미리 준비한 롤링페이퍼를 드렸다. 교수님은 받으시면서 기뻐하셨고, 감동받으셨다.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 꼭 한번 인사드리려고 한다. 아니, 자주 찾아갈 계획이다. 진로상담사로 때론 심리상담사로 함께 해주신 교수님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교수님의 자녀들이 자기와 같은 선생님을 만나길 원해, 노력하신다는 그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다우셨다. 나도 교수님의 제자로서 어느 자리에 있든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