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25.08.27] “피스메이커 발언 분위기 바꿔” “한·중관계 설정 쉽지 않을 것”
- 서대옥
- 2025-09-01
- 15
이 대통령·트럼프 신뢰 구축
“도그마에 안 빠진 실용외교”
미와 공동합의문 없는 것엔
“공식문서화 안 된 게 다행”
미 관세 등 실무 협상 남아
이재명 대통령이 5박6일간의 일본·미국 순방 일정을 마쳤다. 경향신문은 27일 국내 외교 전문가들에게 이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를 들어봤다.
전문가들의 총평은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코리아 이즈 백(한국이 돌아왔다)이 완성 단계에 왔다”고 말했다. 하상응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두 회담 전 우려한 사항들이 현실화된 게 없었다”고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일본을 먼저 가서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미래로 가겠다’고 하고, 미국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안 된다’고 한 것은 도그마와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는 실용외교”라고 평가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두고는 이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첫 상견례 자리에서 인간적인 신뢰를 구축한 데 점수를 줬다. 전봉근 한국핵정책학회장은 “새로운 미국과 나빠진 외교·안보 환경에서 한국식 접근법이 성공했다”며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개인적 신뢰와 협력 모드가 구축된 게 최대 성과”라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는 이 대통령의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을 꼽은 전문가가 많았다. 양 교수는 “피스메이커·페이스메이커 발언은 신의 한 수”라며 “이 대통령이 분위기를 주도해 껄끄러운 의제가 상당히 희석됐다. 한반도 평화 문제를 (회담 의제로) 부각한 전략적 성과”라고 말했다. 하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등 관련 얘기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을 김정은 얘기로 완전히 다른 데로 돌렸다는 게 의미 있다”고 말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북한 문제를 적극적으로 지렛대로 활용하며 북·미관계 개선 시 코리아 패싱 우려를 불식했다”고 말했다.
경제·통상 분야 논의도 긍정 평가했다. 전 회장은 “한국이 (미국의) 제조업이 부흥하는 데 필요한 파트너 국가라는 인식을 명확히 심어줬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관세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디테일하게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공동합의문이 나오지 않은 것은 실패가 아니라 다행이란 의견도 나왔다. 양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과의 정상회담 이후 문서화하지 않고 계속 협의하며 (내용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게 있다”며 “(공동합의문을 만들지 않은 게)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힘이 강한 미국이 숫자로 밀어붙여 우리를 옥죄려고 하는데 공동합의문을 내는 건 한국의 이해에 부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보다 일본을 먼저 방문한 데 대해서도 호평을 내놨다. 민 교수는 “미국 내에서도 한·일관계를 관리하려는 한국의 선제적인 모습에 굉장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부분이 한·미 정상회담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도 “전략적으로 일본을 거쳐 간 것이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다만 양 교수는 “대북 제재 이행이나 북한 사이버테러 등이 합의문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북한에 대한 (불필요한) 자극”이라고 했다.
구체적인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향후 이어갈 세부 논의는 과제로 남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교수는 “관세 협상과 안보 문제가 해결된 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 지난한 협상이 남았다”고 말했다. 민 교수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 간 구축을 약속한 핫라인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며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쉽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김정섭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미관계와 한·중관계가 동등할 수는 없지만 한·중관계를 너무 평가절하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흥규 아주대 미중정책연구소 소장은 “이재명식 실용외교를 하려면 이 대통령이 9월4일 (중국 전승절에) 중국을 가야 한다”며 “중국과의 관계도 잘 관리해 나가는 모습이 미국에도 상당한 압박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전 회장은 “국내의 갈등 요인이 (이 대통령이) 외교적 역량을 활용하는 걸 상당히 제약하고 있다”며 “외교에 대해선 여야 간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