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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칼럼] 생명의 무게

  • 홍보실
  • 2023-11-02
  • 966

[김홍표, 약학대학 교수]


가을걷이가 끝난 휑한 논, 격자 꼴 따옴표로 남은 벼 그루터기에 연한 새순이 돋았다. 이울어 가는 가을볕이 뿜어내는 빛 알갱이는 지난 푸르름을 되살리기에는 충분치 않지만 짝짓기에 바쁜 하루살이 날갯짓을 북돋우기엔 모자람이 없는지 양지바른 곳에선 날것들이 사뭇 분주하다. 하루살이의 한 생애라야 고작 며칠이고 일년생 벼도 두 계절을 넘기지는 못하지만 그들의 삶의 무게가 30년이 한 세대인 인간의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처럼 벼나 하루살이에게도 부모가 있고 그 부모의 부모가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렇다. 그 부모의 위쪽 끝은 대체 어디에 머물게 될까? 정확한 시기나 모습, 그 역사는 짐작하기 쉽지 않지만 확실한 것은 생명의 대물림은 그 어떤 생명체에서도 단 한 번의 끊김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슬슬 과거로 걸음을 떼보자.


인간을 포함한 포유동물은 과거 어느 날 지느러미에 뼈와 근육을 단장한 어류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미국 시카고 대학의 고생물학자 닐 슈빈은 북극 엘즈미어섬에서 물고기와 육상 사지동물의 중간 단계인 ‘틱타알릭’을 발견했다. 발이 있는 이 물고기는 땅 위로 배를 끌어올린 뒤 거침없이 육지로 올라왔다. 사정이 이렇다면 우리 조상은 한때 물고기 모습을 하고 있어야 옳다.


수족관이나 어항 속 물고기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자. 지느러미를 노처럼 써서 목이 찰싹 달라붙은 몸을 통째로 움직이는 물고기에게는 몸의 기둥인 척추와 주변을 살피고 근육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신경계가 포진한다. 몸 가운데를 소화기관이 가로지르고 감각기관이 운집한 머리 반대편 끝에 배설기관이 자리한다.


(하략)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311012053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