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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경쟁 문화의 본질

NEW 경쟁 문화의 본질

  • 배안나
  • 2011-05-12
  • 29438

지난 달 카이스트 사태가 한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다. 올해 들어 네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를 우연으로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등록금 차등제, 100% 영어 강의 제도 등 이 학교의 총장이 도입한 경쟁 시스템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했다. 그래서 서남표 총장도 등록금 차등제를 폐지하고 영어 강의 제도를 일부 개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경쟁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카이스트를 세계 상위권 대학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경쟁 시스템으로의 개혁이었다는 것이 그 논거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이란 말인가? 우리는 여기서 논리적 모순에 빠져든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모순은 우리가 경쟁 시스템과 경쟁 이데올로기를 혼동하는 데서 연유한다. 요컨대, 경쟁 시스템이 문제가 아니라 경쟁 이데올로기가 문제인 것이다. 경쟁 시스템은 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전적으로 나쁠 것도 없고 또 전적으로 좋을 것도 없는,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조직 운영 시스템이다.

경쟁만이 최선은 아냐

그러나 경쟁 이데올로기는 다르다. 이것은 경쟁만을 최선의 것으로 믿는 집단적 사유이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그저 잘한 것이 아니라 최고의 선과 동일시된다. 그래서 학점이 좋은 사람은 단지 학업성과가 좋은 학생이 아니라, 유능한 사람이고 학교에 도움이 되는 사람, 학교를 빛내는 사람으로 간주된다. 반면에 학점이 낮은 학생은 단지 이번 학기에 학업성과가 좋지 않았던 학생이 아니라, 무능력한 사람, 낙오자, 학교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과 동일시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쟁 이데올로기는 낙인 찍어버리는 힘을 갖고 있어 무섭다. 이러한 힘은 올리비에 르불(Olivier Reboul)의 지적대로 ‘익명적 사고’라는 점, 즉 생각해낸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믿는 바이기 때문에 그만큼 강력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적 출세주의와 결합하여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욕망을 넘어서 집착의 형태를 띠고 있다.

경쟁 이데올로기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집단획일주의와 결합하여 더욱 큰 힘을 행사한다. 경쟁 이데올로기는, 학생 개개인의 고유한 특성과 각자가 처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경쟁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만 줄을 세울 뿐이어서, 학생이 변명을 하기가 어렵고, 이런 분위기로 인해 남에게 문제 해결의 도움을 얻을 수도 없다. 이럴 경우 자살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사실 카이스트에는 지도교수 상담과 맨토링 등 많은 좋은 시스템을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문제는 시스템이 아니라 그것이 필요할 때 제대로 작동하지 하는 것을 경쟁 이데올로기가 질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경쟁 이데올로기는 언로를 막는다. 왜? 그것은 총장과 학교 당국에 의한 권력의 담론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소통 이론가 도미니끄 볼통(D. Wolton)은 ‘소통은 협상’이라고 했다.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끼리 소통하기 위해서는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즉 협상하는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합리성 뒤에 숨겨진 위험

경쟁 이데올로기는 경쟁을 통해 발전을 꾀한다는 합리성을 표방하지만 그로 인한 위험은 은폐한다. 이러한 경쟁 담론을 정치권과 언론은 물론 심지어 학교에서조차 대량생산하고 있다. 암암리에 경쟁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단언하고 다른 패러다임은 아예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권력의 담론이 우리의 사고를 어지럽히고 있다.

카이스트에 “이 학교에서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라는 대자보가 붙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결코 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학들, 나아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경기일보 - 201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