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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MT시평]공감없는 경제

NEW [MT시평]공감없는 경제

  • 배안나
  • 2011-05-13
  • 29611

위기를 딛고 경제가 좋아졌다고 한다. 경제성장률만 기준으로 보면 내년에는 더 좋아진다고 한다. 나는 경제전망을 일로 삼는 거시경제학자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전망하는 일이 민망해졌다. 국민들이 공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최상위층 20%의 소득이 감소하고 최하위층 20%의 소득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간 소득계층 60%의 소득은 정체나 위축상태에 있다. 뭉뚱그려 보면 수입재 가격 상승의 영향을 고려한 국민들의 총소득은 그 성장세가 위축된 끝에 지난 1분기에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소득만 그런 것은 아니다. 국민 전체와 관련된 경제문제는 실업과 인플레이션으로 요약된다. 소득이 그리 늘지 않아도 일할 수만 있다면 또 의식주에 어려움이 없다면 살 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를 얼핏 보아도 살 만하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계절적 요인을 제거한 실업률은 지난해 말부터 급등해 극심한 경기침체 상황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수준인 4%에 머물러 있다. 2008년에 이미 외환위기 이래 최악의 물가상승을 경험했지만 잠시 안정됐던 물가가 또다시 급등하고 있다. 농산물이나 석유류를 제외하고도 말이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해 경제적 고통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경제고통지수는 경제위기에서나 나타나는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경제학자의 아이콘인 시장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고 있다. 휴머니즘을 위해 공산진영과 길고긴 투쟁을 한 시절, 경제학자들이 애용한 대표적 지표가 노동배분율이다. 노동배분율은 기업의 부가가치 중 자본가가 가져가는 몫을 제외한, 즉 근로자가 가져가는 몫이다. 경제학자들은 노동배분율이 높아지는 자본주의의 현실을 지적하며 마르크스의 예연은 틀렸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한국경제에서 기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07년부터 노동배분율이 4년째 위축됐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가 작용했다고 하지만 궁색한 변명이다.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을 국민과 함께 일구어낸 대기업이 전해주는 글로벌 경쟁에서의 승전보가 남의 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한 것은 국민의 소심함 때문인가? 광공업에서 상위 3사의 시장점유율(가중평균)은 2005년까지 하향 추세를 밟아왔지만 이후 상승세로 돌아선 뒤 그 기세가 커지고 있다. 산업의 독과점구조가 높아지며 물가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잊고 있던 대기업의 계열사수 급팽창 소식도 여론을 뒤흔든다. 한국경제의 재도약을 바라는 마음에서 중소기업 고유업종제도를 철폐하고 출자총액제한제도를 폐지하자고 국민들이 뜻을 모은 것이 엊그제인데…. 대기업이 진출한 업종도 예사롭지 않다. 서민이 대학생 아이에게 커피 한 잔 사주면 모두가 웃지만 재벌이 자식에게 커피숍을 열어주면 눈물 흘리는 사람이 있다는 농담도 가볍지 않다.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정부에 대한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산다. 고려시대 이래 지방호족과 권문세족을 규율하기 위해 다듬어온 관료제의 역사가 있고 또 지난 60년 간의 경제발전은 그 믿음의 근거로서 충분한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움이 생기면 정부를 탓한다. 하지만 이러한 천부적 믿음조차 저축은행 사태가 송두리째 뒤흔들어 버렸다. 무리한 저금리와 고환율 정책이 자본과 물가의 무한팽창을 낳았다는 사실조차 잊게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은 오늘도 권력투쟁과 이념전투에 여념이 없다. 권력을 잡아야 좋은 정치를 펼칠 수 있다는 그럴 듯한 자기최면에 빠져있다. 우리 경제와 정치의 모습이 고려와 조선시대의 어려웠던 시기와 너무도 유사하여 한국인의 반항적 DNA를 자극한다. 펼쳐져 있는 앞길이 너무 막막하기에 재보선 투표로나마 하소연을 한 것이다. 정치를 왜 하려고 했는지 그 초심을 묻고 싶다. 공감한다면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로 화답함이 어떠한가?

[머니투데이 - 201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