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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예금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NEW [칼럼] 예금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 배안나
  • 2011-06-01
  • 29469

지난 2월 영업정지된 저축은행들에 대한 검찰 수사는 그동안 감춰져 왔던 금융개혁의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내주었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에서 부실대출, 비리 묵인, 기밀유출, 특혜인출, 분식회계, 뇌물공여, 직권남용, 전관예우 등 비리의 종합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불법 행위가 자행되었지만, 금융당국은 사전에 예방하지도 사후에 조치하지도 못했다. 이로 인해 애꿎은 예금자들만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되었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이후 진행된 금융자유화와 규제완화로 금융제도는 선진국 수준으로 근접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 제도를 운용하는 금융인들과 감독 당국의 행태는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또한 금융개혁의 결과가 금융소비자인 예금자의 이익과 편의를 증진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금융인들과 금융당국이 유착하여 비리를 쉽게 감출 수 있게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금융자유화의 폐해는 비단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금융 선진국이라고 알고 있는 미국에서도 이와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미국 상원 조사위원회가 2년 동안 작성하여 지난 4월 발간한 \'월스트리트와 금융위기:금융 붕괴의 해부\'라는 보고서를 보면, 미국을 금융선진국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많은 비리들이 존재하였다. 650여 쪽에 달하는 이 보고서 곳곳에 미국 금융기관들도 부실대출, 분식회계, 전관예우 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는 최고의 학력을 가진 인재들이 최첨단 투자기법을 활용해서 최대의 수익을 거두는 투자은행으로 군림해온 골드만삭스다. 이런 명성과 평가와는 달리 골드만삭스의 영업비밀은 부도덕했다. 골드만삭스는 한편으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문제점을 인지하여 금융위기 직전에 자사가 보유한 상품을 매각한 반면, 다른 한편으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을 금융공학으로 포장한 파생상품을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금융자유화와 규제완화를 위해 지속적인 로비를 해 왔던 골드만삭스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로부터 구제금융을 수혈받았다. 금융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간섭을 반대하고 시장원리에 맡기자고 했으면, 정부로부터 지원을 사양했어야 한다. 사실 정부로부터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한 베어스턴스, 리먼 브라더스, 메릴린치는 파산하거나 인수합병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골드만삭스는 투자은행의 지위를 포기까지 하면서 중앙은행의 지원을 받았다. 또한 골드만삭스는 보험회사인 AIG에 지원된 구제금융의 일부를 지원받기도 하였다.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금융위기 속에서도 골드만삭스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우수한 인재나 정교한 금융공학이라기보다는 회전문 인사- 미국식 전관예우 -에 있었다. 골드만삭스의 전직 최고경영자(CEO) 중에서 미국 재무장관이 두 명(클린턴 행정부의 로버트 루빈, 부시 행정부의 헨리 폴슨), 뉴저지 주지사(존 코진)가 배출되었다. 뿐만 아니라 월스트리트를 감독하는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윌리엄 더들리), 의장(스티븐 프리드만)도 골드만삭스 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세계은행 총재 로버트 졸릭, 유럽중앙은행 총재로 내정된 이탈리아 중앙은행 총재 마리오 드라기의 이력서에도 골드만삭스 재직 경력이 포함되어 있다.

뉴욕타임즈는는 상원의 보고서 발간 직후 금융위기 때문에 기소된 고위관료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개탄하였다. 이런 점에서 검찰수사를 통해 전현직 금감원 간부들을 구속 수사하고 있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좀 나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도드-프랑크 월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보호법을 제정하여 예금자를 보호하려는 시늉이라도 하였다. 반면 예금자 보호의 책임을 져야 할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금융감독권을 그냥 아무 기관에나 주자고 할 수는 없다"면서 기득권 사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금자를 위한 나라는 사치스러운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경인일보- 2011.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