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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시론]헌법의 방향, 오세훈의 방향

NEW [시론]헌법의 방향, 오세훈의 방향

  • 배안나
  • 2011-08-08
  • 30352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발의했다. 과잉복지가 이유이다. 어이없다. 그동안 국가는 1인당 국민소득이라는 단순평균 숫자놀음에 빠져 국민복지는 유보한 채 재벌만 살찌우지 않았던가. 그만하면 재산이나 소득의 많고 적음 또는 노동 여부나 노동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균등하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도를 고민할 법도 하건만.

사회복지국가는 조세국가이다. 조세를 통해 부의 재분배를 꾀함으로써 사회정의를 지향한다. 납세자는 이익을 누리는 만큼 세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국민으로서 납세의무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에 비례하여 조세를 부담한다. 국가로부터 납세자가 받는 이익에 상응하는 근대적 ‘응익과세(應益課稅)’의 원칙으로부터 소득, 재산, 부와 같은 납세능력에 따른 현대적 ‘응능과세(應能課稅)’의 원칙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헌재 또한 일관되게 확인하고 있다. 헌법기초자인 유진오 역시 대한민국 헌법이 그 제정 때부터 모든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을 균등하게 확보케 하는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실현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런데 오세훈식 복지정책은 의무교육과정에서 밥 먹는 것조차 사람을 구분하려 한다. 그의 셈법은 소득을 기준으로 단순이분법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유상’급식 부담을 져야 하는 소득 상위 50%만이 주민투표에 참여해야 한다. 그는 무상급식 대상에 해당하는 소득층이 주민투표권을 공짜로 가지는 것도 못마땅해 할 것이다. 그에게 보통선거는 과잉정치이다.

단체장이 주민복지의 책임을 덜기 위한 꼼수로 직접민주제도인 주민투표가 악용되어서는 안된다. 주민과 함께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고민을 하는 수단이어야 한다. 급식 문제가 교육감의 사무여야 하는 것은 경제의 논리가 아니라 교육의 논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소득 수준으로 서울시민을 둘로 나누는 시장에게 이런 얘기가 먹힐 리 없다.

그러니 그에게 주민투표 예산 180억원과 연 5000억원의 급식 예산의 차이는 ‘정치생명’을 걸 정도로 엄청나다. ‘강남 3구 몰표’ 시장으로서의 안목이다. 그러나 돈보다도 사람이 먼저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급식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복지를 가르치는 일이다. 먹고 사는 차이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된다는 살아 있는 인권교육이다. 의식주(醫食住)의 기초생활권조차 후속세대에게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에 무슨 미래가 있을까.

주민투표 결과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말이 시장직 사퇴로 연결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겠다. 다만 아이들 밥에 유상과 무상의 딱지를 붙이는 일 가지고 손쉽게 사생결단하는 그가 걱정스럽다 못해 두렵다. 대권을 향해 도약하고 싶다면 증세를 주장하시라. 통 크게 보편급식을 감당할 만큼의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고민하시라. 가파른 누진세제로 뒷받침하는 보편적 복지야말로 지속가능한 사회의 생명줄이다.

헌법이 가리키는 방향은 보편적 복지의 길이다. 헌법은 복지기준을 높이는 방향으로는 열려 있지만, 그것을 낮추는 쪽으로는 닫혀 있다. 주권자의 눈으로 보면, 유·무상으로 급식을 가르는 일은 헌법이 천명한 ‘각인의 기회균등’(전문)과 사회적 기본권에 구현된 사회복지국가원리, 특히 무상의무교육(제31조 3항) 조항과 어긋난다. 따라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참여 거부로 대응할 일이 아니다. 오 시장은 주민탄핵감이기 때문이다. ‘유상권리시민’과 ‘무상수혜신민(臣民)’을 구별짓는 것은 신분사회로의 후퇴이다.

[경향신문 - 201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