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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기고] 차선책도 안되는 정전 방지대책

NEW [기고] 차선책도 안되는 정전 방지대책

  • 배안나
  • 2011-10-10
  • 30183
 

난달 26일 정부는 정전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놀랍게도 그 주 내용은 정전방지시스템 구상이 아니라 전기요금 인상이다. 묘하게도 요금 인상 계획을 수치로 밝히는 대신 원가주의체계 도입 등 원칙 천명에 그치고 그 대신 연료비연동제, 계절별ㆍ시간대별 차등요금 등 뒷날 요금 인상 근거들은 빠짐없이 제시했다.

그 대신 당연히 있어야 할 관련기관들의 운영혁신조치는 없다. 물론 지식경제부 장관이 사의를 표했고 공무원과 산하기관 임직원 몇 명의 인사조치가 있었다. 그러나 큰 의미가 없다. 지금은 실패의 경험을 살린 재발방지책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전사태 이후 관련기관들은 정전 책임 희석 캠페인에 몰두했다. 우선 전력의 원가회수율이 90.3%에 불과해 지난 3년 한전 적자가 6조원이라는 사실이 강조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전력요금 때문에 GDP 대비 전력사용량이 회원국 평균의 1.7배에 달한다고 우려했다.

이에 덧붙여 장기 안정공급을 위한 대폭적 원전 건설 역시 강조됐다. 물론 우리의 낮은 전력가격 수준은 단순 환율 기준이며 구매력(PPP) 기준으로는 중간 수준이라는 사실은 감추었다. 더구나 우리나라의 GDP당 높은 전력소비는 우리 수출의 주역인 에너지다소비산업 비중이 경쟁국 대비 2배쯤 높기 때문이다. 가계당 전력소비량은 구매력 부족으로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그 대신 투자 부족이 정교한 전력시스템 운영 실패를 초래한다는 엉뚱한 기술적(?) 주장을 폈다. 당연히 소비자 부담 증가는 외면하고 전력사업 효율성 검토는 아예 제외됐다.

이제 백 번을 양보해 요금 인상과 투자 확대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지를 차선(次善)의 선택이론에 의해 점검해 보자. 이 이론에 의하면 완전경쟁과 같은 효율성 달성 조건이 일부라도 충족되지 못한다면 어떤 보완조치로도 차선책을 달성할 수 없다.

이에 많은 시장실패를 다루는 에너지경제학에서는
자원배분 효율성과 형평성 간의 충돌현상 해결을 일단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는 경우 한계가격에 기준한 요금설정원칙만을 채택하면 `현실적 차선책`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한계가격이란 에너지시장에서 만연한 초과이윤 추구 원칙을 부정하는 의미다.

과연 우리는 차선의 정전 재발 방지 대책이나마 추구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많은 부분 부족하다. 지금 한전 경영적자는 원전(양수발전과 폐기물처분장 대동)과 고압송전망, 스마트그리드 등 단위 설비용량당 세계 최고 수준 투자의 `혁신` 효과가 입증되지 않기 때문에 유발된 것이다. 그럼에도 성과급 연 5000억원대, 홍보비 500억원대를 지출하는 등 과시적 경영을 지속하는 것은 초과이윤을 당연시하고 적정 한계비용의 범위를 왜곡하는 것이다. 주인-대리인이론의 도덕적 해이에 해당하며, 전형적 관료주의의 폐해다.

이 결과 아무리 요금을 올리고 투자를 늘려도 정전 같은 비상사태를 근본적으로 막는 `효율적` 전력사업은 불가능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따라서 9ㆍ26 대책은 차선책도 못 된다. 그렇지만 현실은 전력가격 인상을 방치하면 더 큰 국민의 부담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국민의 이해에 기반을 둔 `적정` 수준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적어도 연 1조원 이상의 과잉투자, 부실경영을 줄여 요금수준이 `진정한` 한계가격에 접근함을 증명해야 한다. 쓰고 싶은 돈 다 쓰고 난 결산과정에서 제시되는 한계요금은 의미가 없다. 장관 교체와 직원 인사조치보다 한계요금 원칙산정과 관련기관 운영혁신 조치가 더 급하다.


[매일경제 - 2011.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