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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월요논단]情의 사회와 부정행위

NEW [월요논단]情의 사회와 부정행위

  • 배안나
  • 2011-10-17
  • 31449

 네덜란드에 트롬페나스(Trompenaars)라는 학자가 있다. 그는 국제경영을 가르치면서 다국적 기업의 관리자들을 초치해서 교육을 시키고 있다. 마침 여러 나라에서 사람들이 오기 때문에 각 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조사해서 교육에 반영한다. 말하자면, 이런 것을 물어본다.

 

"친한 친구가 차를 몰고 가다 사람을 치었는데 증인이 당신 밖에 없다. 당신이 과속 사실을 숨겨주면 친구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끝난다. 그런데 당신이 사실 대로 이야기한다면 친구는 큰 벌을 받게 된다. 이 때 당신은 사실대로 이야기하겠는가? 친구니까 과속 사실을 숨겨주겠는가?"

 

아무리 친구라고 하더라도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비율이 캐나다 사람들은 96%에 이르렀고 미국, 영국, 서독이 90%를 넘었다. 프랑스, 일본, 싱가포르 등은 60%대였고, 중국, 인도네시아, 러시아가 40%대를 기록했다. 한국은 얼마였을까? 26%로 뚝 떨어진다. 38개 조사대상 국가 중 38위. 트롬페나스는 93년 이 자료를 처음 발표하고 나중에 업데이트를 해 나갔지만 한국의 위상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위증을 해서는 안 되는 줄 알지만, 어떻게 친한 친구 일인데 사실 대로 이야기한단 말인가?"하는 것이 우리네 한국인의 정서가 아닌가 싶다. 트롬페나스의 조사는 결코 특별히 이상한 조사가 아닌 것 같다. 필자가 기업체 연수원에서, 공무원 대상 교육에서 수차례 확인하였지만 결과는 유사하였다. 서구식 교육을 받고 있는 대학생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은 인간관계를 중시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정(情)이 중요한 \\'정(情)의 사회\\'다. 규칙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정을 위해서는 이 규칙과 약속을 과감히 왜곡하고, 적절히 변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규칙대로 하거나 원칙을 너무 강조하면 살아가기 힘들다. \\'고지식한 사람\\', \\'인정이 없는 사람\\'으로 통하기 쉽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법이나 원칙을 무시하고 사는 것이 물론 미덕은 아니다. 법과 원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절히 \\'현실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한 생활의 노하우다.

 

한국인의 이런 정적인 요소가 우리를 이렇게 성장시킨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뜻이 맞고 서로 통하기만 하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야근도 불사하고, 주말도 반납하며, 공기를 단축시키고, 해외 오지시장을 개척한다. 기술이 없어도 모방을 하고, 자원이 없어도 몸으로 때운다.

 

모두가 못 살 때는 이러한 \\'정의 문화\\'가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세계 13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어마어마한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에서도 리더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규칙보다는 인간관계를 앞세우고, 법보다는 정을 우위에 둘 수 있겠는가. 국제투명기구에서 매년 국가 부패지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한국은 2010년 38위를 기록했으나, 줄곧 40위권이었다. 주요국을 대상으로 한 뇌물공여지수도 한국은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이런 오명을 언제까지 안고 가야하는가.

 

권력도 지위도 없는 일반인에게 \\'정의 문화\\'는 따뜻한 생활의 활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사회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이 정실에 따라 행동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연고에 의해 인사가 이루어지고, 정실에 의해 국가 자원이 배분되어서야 되겠는가. 회사의 내부 정보를 이용하여 몇몇 사람이 증시에서 이득을 보고, 회계조작으로 오너가 사익을 챙겨가고, 전관예우에 의해 사법부가 제대로 판결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정실주의가 조직에 팽배하면 직장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보다는 어디에 줄을 대야 하느냐를 가지고 고민하게 된다.

 

대학생들은 이제 중간고사 기간이다. "친구니까 도와주지" "이번 한번이면 어떨까" 하는 사이 사회는 멍들고, 선진국은 멀어져 가는 것이다.

[경인일보 - 2011.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