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학교

검색 열기
통합검색
모바일 메뉴 열기
 
 
 

아주인칼럼

[칼럼] 한번 잘못 찍혔다간…무서운 `낙인효과`

NEW [칼럼] 한번 잘못 찍혔다간…무서운 `낙인효과`

  • 이지윤
  • 2013-06-17
  • 28558

심리학에서 종종 이야기하는 것 중에 `낙인 효과`라는 말이 있다. 이는 명사 정보가 주는 신속한 판단의 장점과 편견의 발생이라는 단점을 모두 아우르는 현상을 뜻한다.

예를 들어 "○○는 사람을 죽였대"라는 말과 "○○는 살인자래"라는 말을 보자. 두 표현 모두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전자보다 후자에서 우리는 무언가 더 강한 느낌을 받는다. 왜일까? 사람을 죽였다는 묘사보다는 살인자라는 범주, 즉 명사 정보가 더 강한 심리적 효과를 지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반응도 다르다. 전자의 표현을 들으면 "○○가 왜 그랬을까?" 등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는 반면, 후자를 들으면 "○○는 나쁜 인간이군!"이라는 식으로 단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범주로서의 명사 정보는 일종의 `심리적 도장찍기` 효과를 지닌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낙인 효과라는 말을 빌려 이야기한다.

그런데 낙인 효과는 그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대해 평가하는 전반에 걸친 오류와 함정을 잘 말해주는 기회가 된다.

예를 들어보자. `55세의 중년 남자로 서울 근교 신도시 거주자이고 대형 빌라 소유주이며 대기업 임원`이라고 사전에 정보를 들은 김갑동 씨를 지금 막 만났다. 이 사람은 그런데 `청바지를 입고 있고, 왁스를 바른 최신 유행의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으며,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다`. 아마도 이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소 당황해 할 것이다. 하지만 김갑동 씨에 대해 사전에 들은 정보가 `상상력이 풍부하며, 다양한 활동을 즐기며, 외향적 성격`이었다면 어떨까? 지금 내 앞에 있는 모습 때문에 놀라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무엇일가? 전자는 특정 인물의 명사화된 범주 정보를 나열한 것이고 후자는 그 인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에는 그 범주 정보들로부터 쉽고 빠르게 전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을 터이고 후자의 경우에는 그 묘사 자체에만 기초해 지금 있는 사람을 판단할 가능성이 더 크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우리 주변의 사회 현상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하철 ○○녀`라든가 `○○남`으로 어떤 사람을 불러놓고 그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성격 혹은 행동 특징들까지도 우리는 `당연히 그렇겠지`라는 생각으로 빠르게 추론해 낸다. 물론 그렇게 추론해 낸 정보들이 그 사람과 맞아떨어질 리가 만무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명사화된 범주 정보로 어떤 사람을 쉽고 빠르게, 즉 쉽게 판단하고는 그 판단이 맞을 것이라는 착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 그릇된 판단의 중심이자 가장 큰 피해자는 나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보는 사람에 관한 서류에는 수많은 명사범주 정보가 존재한다. 출신지역, 출신학교, 형제관계, 예전의 직급 혹은 직함 등 말이다. 그런 범주들이 과연 그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을까? 굳이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하지 않고서라도 그 설명 양이 얼마 되지 않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의 성격이라든가 성향, 그리고 장단점을 판단하는 것은 당연히 그 사람을 여러 차례 다른 상황과 시점에 만나는 것을 필요로 한다. 그러면서 일관적으로 나타나는 측면을 살펴봄으로써만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다르게 지닌 특징들을 파악해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압박이 많을수록 CEO들은 명사화된 범주 정보들에 눈길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부분 자신의 고정관념을 만족시키거나 바라던 결과로 이어지기보다는 당황스럽게 만드는 경우를 만나는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에 대해서만큼은 쉽고 빠르게 내리는 결론이 대부분 틀린 이유다.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사람에 대한 판단인 이유는 빠르게 인출된 고정관념이 내 판단을 장악할 가능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만나면 맨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최대한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야 내가 원하는 인재상과 맞아떨어지는가를 판단해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매일경제 2013.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