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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사랑은 가능한 일인가 : 김기덕의

NEW [칼럼] 사랑은 가능한 일인가 : 김기덕의

  • 이지윤
  • 2013-06-19
  • 28944
프랑스의 정신분석 철학자 자크 라깡(Jacques Lacan)은 "남녀가 하나가 되는 진정한 성관계 같은 것은 없다(Il n'y a pas de rapport sexual)"라고 선언함으로써 사랑을 믿어온 많은 '순진한' 이들을 실망시켰다. 라깡에 따르면, 남녀의 욕망과 무의식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참으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과연 라깡의 진단은 옳은가? 김기덕은 <빈 집>(2004)에서 아내가 남편 이외의 다른 남자에 대한 사랑과 환상을 가짐으로써만 남편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남편과 아내의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는 것, 남녀 간의 사랑은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욕망에 기반을 둔 '착각'임을 보여주었다. <빈 집> 이후에 나온 <비몽>(2008)에서 김기덕은 여전히 사랑의 어려움을 이야기하지만 그의 결론은 사뭇 다르다. 
 
<비몽>의 내러티브는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찬찬히 보자. 일본인 남자 진이 사랑하는 여자는 그를 떠났지만, 그는 그녀를 여전히 욕망하고 꿈 속에서 그녀를 찾아간다. 진이 꿈 속에서 옛 여자를 찾아가서 만나면 그것은 그의 꿈 내용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전혀 일면식도 없는 한국여자 란이 자다가 일어나 진의 역할을 한다. 진이 꿈꾸는 내용을 란이 몽유의 상태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진이 꿈에서 옛 여자를 키스하면, 란은 몽유상태에서 그녀의 옛 남자, 즉, 그녀가 싫어서 스스로 떠났던 과거의 남자를 키스한다.
 
옛 여자에 대한 진의 욕망을 란이 몽유상태에서 행동으로 실현하지만, 그녀가 란 대신 찾아가는 것은 진의 옛 여자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과거에 사랑했지만 지금은 헤어진, 그녀의 옛 남자이다. 옛 여자를 아직도 욕망하는 진이 그녀를 꿈속에서 보는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진의 꿈 때문에 보기 싫은 옛 남자를 찾아가는 란은 고통스럽다.
 
진이 행복하면, 란은 불행한 것이다. 진과 란은 모두 사랑의 기억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그들의 과거의 사랑의 대상에 대한 현재의 욕망은 서로 반대이다. 흑과 백처럼 이들은 서로 반대이지만 꿈꾸는 행위와 몽유상태의 행동으로 서로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남자 진과 여자 란은 흔한 남녀 사랑의 이데올로기가 말하듯 서로 이해와 조화로 하나가 될 수 있는 보완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꿈을 통해 남자 진이 잃어버린 사랑의 대상을 만나고자 욕망하면 할수록, 여자 란은 잊고 싶은 과거의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되는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된다. 사랑에 대한 욕망을 매개로 이들은 관계를 갖게 되지만, 이들의 욕망이 만들어 내는 갈등은 화해불가능하다. 옛 여자를 사랑하는 진의 욕망과 옛 남자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 란의 욕망은 충돌한다.
 
이들은 서로 상대를 비난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않는다. 란은 진에게 옛 애인의 사진을 버리고 그녀에 대한 마음을 버리라고 요구하지만, 진은 옛 여자를 사랑하며 그녀에 대한 욕망을 중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란은 진의 욕망 때문에 자기가 혐오하는 옛 남자를 다시 만나야 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말하지만, 몽유상태에 들지 않기 위해 잠자는 것을 중단하지는 못한다.
 
진과 란이 갈등하는 장면에서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은 발(베일)로 반투명하게 가려지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상대방이 역시 반투명하게 발로 가려진다. 상호이해를 통해 하나가 되는 성관계가 이들에게 불가능함을 영화는 암시한다.
 
이들은 해결책을 찾으려 고심한다. 동시에 잠을 자지 않는 상태, 즉, 한 사람이 자면 다른 사람은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함으로써, 한 사람은 꿈을 꾸고 다른 사람은 행동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애를 쓴다. 하지만 실패한다. 수마에 굴복하는 것이다. 이렇게 실패가 계속 되는 동안, 란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진은 옛 애인의 사진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버려진 사진 속의 진과 그의 옛 애인의 모습을 란이 보자, 카메라는 갈대밭에서 일어나는 환상의 장면으로 전환한다. 자동차를 몰고 진의 옛 여자와 란의 옛 남자는 갈대밭으로 들어간다. 둘은 연인사이이다. 이들은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섹스를 하다가 심하게 다투게 된다. 
 
둘의 모습을 진과 란은 차 밖에서 보고 있다. 다투던 둘은 차 밖으로 뛰쳐나와 더 심하게 싸운다: 남자는 여자가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러면 죽여버리겠다고 말하고, 여자는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고 상대 남자만을 사랑하는데 왜 의심하는지 미친 것 아니냐고 항변한다.
 
이 둘이 서로 울부짖으며 다투는 동안,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진과 란이 이어받아 서로 다투고, 다시 진 대신에 (옛)남자가 란과 다투며, 이어, 란 대신에 (옛)여자가 (옛)남자와 다툰다. 갈대밭 장면에서 진과 (옛)남자는 하나처럼 역할하고, 란과 (옛)여자는 하나처럼 행동한다.
 
이러한 형식은 진과 (옛)남자는 남성으로서 동일하고, 란과 (옛)여자는 여성으로서 동일하다는 것, 또는 난에게 진과 (옛)남자는 같은 남성으로 다가온다는 점, 진에게 란과 (옛)여자는 같은 여성으로 다가온다는 점을 의미한다. 어쨌든, 여기에 암시되는 것은 남성은 여성을 소유, 지배, 집착하고, 여성은 이러한 남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거부하고 못견뎌한다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은 자기 밖을 벗어나지 못하고, 자기 안에 갇힌 채, 자기와 다른 상대의 타자성(alterity)의 존재를 보지 못한 채, 자기세계로 완전히 들어오지 못하는 상대를 비난한다.
 
갈대밭의 환상 장면 후 란은 진을 찾아오고 둘은 보광사에 함께 간다. 이들은 부처상 앞에 함께 합장을 하고, 란이 목어와 종을 치면 진이 들어본다. 불교 벽화를 배경으로 둘은 함께 돌탑을 쌓는다. 쌓은데 성공하자, 진이 눈을 감고 합장을 한다. 그가 눈을 뜨니, 란이 사라져 보이지 않자, 그녀를 찾다가 돌담이 무너진다. 란을 이리저리 찾다가 진은 자동차 안에 들어가 기다린다.
 
자동차 안의 진이 있는 모습을 빛으로 환한 커다란 부처상이 내려다보고 있다. 진이 잠에 들어 졸고 있는 동안, 란은 부처상을 배경으로 나타난다. 어디 갔었느냐고 묻는 진의 질문에 란은 나비를 따라갔었다고 말한다. 진은 겨울인데 나비가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절에 함께 왔지만, 란은 자기 영혼의 세계인 나비를 따라가고, 진은 여전히 란의 초월적인 나비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절에서 둘은 화해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후 진의 욕망과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란의 관계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다시 만난 이들은 자동차 안에서 키스를 하고 편안하게 잠이 든다. 하지만 진은 꿈속에서 옛 애인이 현재 사귀는 남자와 함께 있는 곳으로 찾아가 그를 죽인다. 물론 이러한 진의 욕망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것은 란이다. 이 살인 사건으로 진의 옛 여자는 정신병자가 되고, 란 또한 정신분열로 진의 옛 여자와 같은 정신병원으로 이송된다.
 
진은 자기의 욕망에 의해 란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고, 자신의 욕망이 일어나는 잠에 다시는 들지 않기 위해 처절하게 자해를 감행한다. 쏟아지는 잠을 없애기 위해 끌로 자기 머리 가죽을 찢고, 망치로 자기 다리를 내리 친다. 진의 자기희생을 보며, 란은 연민의 눈물을 흘리고, 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진은 잠을 자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죽음으로 자기 생명을 끝내지 않는 한, 욕망을 끊을 수 없고, 욕망이 살아 있는 한, 란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자신을 멸하기 위하여 한강 다리에서 떨어져 죽는다. 그 동안 란은 병원에서 목을 매 자살하여 나비가 된다. 
 
강에 떨어져 죽은 그의 얼굴에 나비가 날아와 앉고 진은 눈을 뜬다. 나비가 다시 날아서 진의 손에 앉는다. 이제 두 개의 손이 서로를 잡는다. 
 
이 영화 후반부에서 진은 여자를 차지하려는 "바보스런" 남성적 욕망을 버린다. 그는 여성 타자와 합일 될 수 없으며, 여자와 하나로 합일 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이 폭력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는 이제 자기의 욕망을 여성의 몸에 대한 환상을 통해서 만족시키려는 바보짓을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합일적 성관계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결핍과 욕망의 끝없는 고통의 사슬을 자살로 끊어 버린다.
 
진이 자신의 욕망을 끊어 버릴 때 역설적으로 사랑이 온다. 그녀와 손을 함께 잡는 것이 이제 가능해진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진이 란에 대한 책임으로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버릴 때, 란이 진에 대한 자신의 오해와 증오의 세계를 다 버릴 때, 둘의 영혼은 손잡을 수 있게 된다.
 
남성과 여성이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고 타자를 자기 속으로 들어오기를 요구(demand)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일성 방식에 의해 고통을 겪는 타자성의 존재를 알고 자기를 버릴 때, 주체는 타자와 손을 잡는 사랑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는 암시한다.
 
정경훈 아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오마이뉴스 2013.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