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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콜롬비아와 한반도, 험난한 평화

NEW [칼럼] 콜롬비아와 한반도, 험난한 평화

  • 이지윤
  • 2013-06-24
  • 27371

라틴아메리카의 유명세는 빈번한 경제위기와 더불어 일부 국가들의 기나긴 내전 탓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50년 넘도록 내전에 시달리고 있는 콜롬비아에서 지난 5월 말 약 6개월의 평화회담 끝에 정부와 최대 반군조직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이 토지개혁을 통한 농촌 발전방안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반군의 무장해제, 정치적 반대 행사 또는 정치 참여의 보장, 불법 마약거래 근절, 희생자들의 권리 구제, 평화협정 이행 등 협상 의제가 산적해 있긴 하지만.

내전은 1899~1902년의 ‘1000일 전쟁’, 1946~1958년 보수파와 자유주의 세력 간에 전개된 ‘대폭력’의 파생물로 볼 수 있으니 콜롬비아의 현대사 자체가 상호 적대와 불신의 고리로 연결된 셈이다. 난항이 예상되지만 금년 말까지 회담에 진전이 있다면,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엘살바도르의 파라분도마르티민족해방전선과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민족해방전선의 선례처럼 좌익 게릴라 단체에서 합법적인 정치세력으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1964년에 창설된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1990년대에 접어들어 정부군이나 우익 준군사 전투부대에 맞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마약거래, 불법 금 채굴, 요인 납치에 착수한 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지만 악마적 속성을 지닌 게릴라 단체가 됐다. 약 1만6000명에 이르던 대원은 2001년 9월11일 이전부터 미국 중앙정보국에 의해 국제 테러조직으로 낙인찍히고 2002년 반군 진압을 공언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된 알바로 우리베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대대적인 공세를 전개한 결과 요즘에는 8000명 정도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런 위기 가운데 인구가 많지 않은 동남부 농촌 지역을 여전히 통제하고 있는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은 작년 초 몸값을 노리는 납치활동의 중단을 선언한 데 이어 10월에는 10년 만에 정부와 대면 협상을 재개하면서 합법화의 기회를 찾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다수가 대화를 지지하지만 전임 대통령 우리베를 비롯한 지배층은 대체로 반군과의 회담 구상을 비판하고 콜롬비아무장혁명군이 납치·재산 강탈·살인 등 범죄행위에 연루되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 반군의 사면과 정치 참여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약 6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무려 500만명으로 추산되는 강제이주민을 낳은 콜롬비아의 내전 속에는 정부군과 게릴라 반군의 오랜 교전은 물론 마약거래상과 우익 준군사 단체,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마약거래 범죄 조직 등의 발호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따라서 콜롬비아인들이 갈등의 고리를 끊고 평화의 길로 나아가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대폭력’의 와중에도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한 콜롬비아의 비극은 휴전과 반목 상태를 극복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데 거듭 실패하고 있는 한반도의 고통과 닮은꼴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이데올로기적 배제 대상을 일컫는 표현이 ‘빨갱이’에서 ‘종북좌파’로 변했지만, 자극적인 딱지 붙이기를 통한 적개심 고취의 구습은 여전하다. 적대관계의 선봉에 섰던 남북의 군 지휘관들이 2004년 6월 장성급 군사회담을 가진 바 있고 2007년 10월에는 남북 정상회담도 열렸지만 그뒤 관계 개선의 가능성은 군사적 긴장과 상호불신 속에 점점 희박해졌다.

정권을 뛰어넘어 일관된 대북정책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만 평화 정착의 염원은 변함이 없어야 한다. 다시 맞이한 6월에 바라기는, 누가 먼저 전쟁을 시작했는가라는 차원을 넘어 이 땅에 또다시 전쟁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뼈아픈 교훈을 되새기고, 파스칼이 꿰뚫어본 대로 선과 정의를 추구하려는 전쟁에서 “천사가 되려 하다가 모두 짐승이 되었다”는 통렬한 반성이 이어졌으면 한다. 그것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남북의 수많은 영령들에 대한 진지한 보훈이 아닐까?

 

박구병 아주대학교 사학과 교수

[경향신문 2013.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