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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할일이 아무리 많아도 순서만 정하면 술술~

NEW [칼럼] 할일이 아무리 많아도 순서만 정하면 술술~

  • 이지윤
  • 2013-11-11
  • 27452

심리학 연구문헌에 자주 등장하는 것 중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라는 현상이 있다. 실제로는 그만큼의 목표를 달성하기가 어려운 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낙관적 기대를 갖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낭패를 보는 모든 경우를 의미한다.

이런 `계획오류` 현상이 일어나는 가장 흔하고 중요한 이유는 그 일을 완성할 수 있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과 목표를 하나로 묶어서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주부가 아침에 일어나 저녁에 있을 집들이를 준비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 준비를 하면서 `저녁 전까지 식사준비를 마치자`라고만 마음먹으면 시간의 잣대도 하나(오늘 하루)이고, 목표도 하나다(집들이 마치기). 목표가 하나밖에 없으니 `그거 하나 못하겠어?`라는 낙관적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그 최종목표를 위해 해야 할 세부적인 일들(국, 다양한 반찬들, 밥, 후식으로 사용할 과일 등)이 모두 하나의 시간잣대와 목표로 들어간다. 따라서 일의 경중이나 우선순위, 더욱 중요한 건 개별적인 하나의 일들이 어떤 시간을 요구하는가에 대한 조망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재치 있는 주부는 경험상 이런 경우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무언가 간단한 작업을 한다. 할 일들을 종이 한 장에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그렇게 써 내려가면서 일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연관성 있는 일들을 서로 이어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하나의 시간잣대와 목표는 여러 개의 시간 구간과 세부목표들로 구체적으로 구성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하면서 허둥지둥하게 되는 현상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게 되고 차근차근, 즉 하나 하나씩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은 개인이든 조직이든 시간이 없고 다급해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일을 한번에 하려고 허둥지둥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 혼란스러움 역시 낙관적 기대에 의한 계획오류의 결과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커다란 목표나 비전이 정해지고 이것에 구성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면 지체하지 말고 그 목표를 이루고 있는 하위 목표들(즉 구체적인 일들)을 열거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어떤 일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한지와 그 작은 일들 간의 관련성이 파악되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일의 `순서`가 발생한다. 그리고 이 `순서`라는 개념은 당연히 어떤 일을 순서 없이 동시에 하려는 혼란스러움을 막아주는 제어장치 역할을 해 준다.

따라서 지혜로운 리더라면 조직이 혼란스러워할 때 강한 하나의 비전을 몇 가지로 쪼개어 줄 수 있어야 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매일경제 2013.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