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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탐욕의 시대, 무기를 놓지 말자

NEW [칼럼] 탐욕의 시대, 무기를 놓지 말자

  • 정우준
  • 2014-05-22
  • 21340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넘어져 다친다면, 그것은 사고(accident)다. 그러나 내 몸 돌보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병을 얻으면 그것은 필연(necessity)에 가깝다. 사고의 특성은 예측할 수 없음과 우연성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앙들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고라고 할 수 없다. 사고가 아니라면 필연적이지는 않더라도 매우 높은 개연성을 가지고 그럴 수밖에 없게 했던 인과의 고리가 있는 법이다. 과연 우리 사회의 수많은 재앙을 낳는 인과의 고리는 무엇이고, 그 고리는 어떻게 끊어야 하는 것인가?

이 재앙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탐욕과 그 탐욕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부조리한 사회구조다.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의 매출 증가율이 연간 2%에 그치고 수익성은 악화돼도 대기업 대주주들의 배당금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우리나라 10대 그룹 대주주 10명이 상장계열사로부터 받은 배당금은 최근 4년 동안 약 1조원! 우리나라 전체의 1년 실업급여 예산이 3조8600억 원이니까, 우리나라 전체 실업자들(약 70만 명)이 받을 돈의 약 30%에 해당되는 금액을, 최고 부자 10명이 챙겨간 셈이다. 그러면서도, 산업재해로 백혈병을 앓다가 죽어가는 딸을 부둥켜안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한 아비에게 ‘당신이 대재벌을 상대로 이길 수 있겠어’라고 말하며 오만한 탐욕을 숨기지 않는 자본, ‘인간이 미래’라는 슬로건을 내건 기업이 대학을 인수하고 이른바 돈이 안 되는 학과를 폐지하면서 ‘자본 논리는 어디 가나 통한다.’며 교육 현장마저 탐욕의 장으로 만들어버린 자본, 이것이 우리 시대의 대자본의 모습이다. 정부는 또 어떤가? 탐욕스런 자본에 대한 관리 감독조차 규제라고 여기며 기업하기 좋은 나라 만들기에 열중한다. 또 자본은 상납과 인사 혜택을 통해서 감독받아야 할 관료들을 오히려 관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관행이 되었고, 그 결과 생명이라는 가치보다도 자본의 이윤이 우선되어야 할 가치라고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바로 작금에 발생하는 일련의 참사의 원인인 것이다.

한 마디로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 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가 되어버린 듯한, 야만적이기 이를 데 없는 천민자본주의와 거기에 기생하는 관료사회가 바로 재앙의 원흉이다.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 당시, 공기 단축을 위해서 최저 임금을 받으며 휴일도 없이 일하던 노동자 중 77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수백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시공사가 사망자 한 명당 당시 돈으로 50만원을 보상한 것 이외에 국가적 보상은 없었다. 인간이라는 가치가 이윤의 극대화라는 명분 앞에서 희생이 강요되었던 것은 과거의 일일 뿐인가? 민주화된 지금,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는가? 400여명의 승객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익을 먼저 챙긴 기업이 어디 청해진뿐이겠는가? “미개한 국민”이라는 재벌 출신 정치가 아들의 발언을 어린 학생의 단순한 실언이 아니라, 그들의 골수에 박힌 서민에 대한 폄하의식의 표현일 것이라는 의구심은 그래서 정당화된다.

어떤 부처의 기능이 축소되거나 해경이 해체되고 국가 안전처가 신설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자본과 관료의 탐욕, 그리고 그것을 정당화 하는 시장지상주의를 끊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서민들을 자신들의 탐욕의 수단으로밖에 보지 않는 천박한 가치관을 도려내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탐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공공성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자본과 관료에게 그런 수술을 맡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면서, 20세기의 대표적인 역사학자 홈스봄의 경고를 떠올린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선거에서 투표로, 그리고 비판적인 말과 글로, 그것도 부족하면 촛불이라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탐욕에 맞서, 눈 부릅뜨고 행동을 하며 연대의 지평을 넓혀 나가야 한다. 그 일이 비록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기 때문이고, 우리에게 지금보다는 정의롭고 도덕적인 사회를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송하석 아주대학교 기초교육대학 교수/철학]

[중부일보 2014.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