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학교

검색 열기
통합검색
모바일 메뉴 열기
 
 
 

아주인칼럼

[칼럼] 소통이라는 능력과 탈감정사회

NEW [칼럼] 소통이라는 능력과 탈감정사회

  • 이솔
  • 2014-10-23
  • 19922
얼마 전 삼성의 직무적성검사에 역사 문제가 출제된 것이 기사거리가 되었다.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대기업들 또한 입사시험에서 인문학을 강조하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학벌이나 영어 점수, 자격증과 같은 스펙만으로는 사회성이나 충성도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으니 사람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는 인간성 테스트를 하겠다는 것이다. 합숙 면접을 통해 지원자의 인성능력을 평가하는 것과 같은 발상이다. 이때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 성품은 취업을 결정하는 고차원적인 능력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EQ(Emotional Quotient 감성지수)’가 있다. 1990년대에 등장한 ‘감성지수’는 기존의 ‘IQ(Intelligence Quotient 지성지수)’를 대체하는 새로운 평가도구로서 직장과 가정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되었다. ‘EQ’를 측정하는 각종 평가 도구가 개발되고 감성을 계발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 학습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제 감성은 취업이나 승진 심지어 결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본이다. 에바 일루즈는 이처럼 공감 혹은 소통이 능력으로 치부되는 사회를 ‘감정자본주의’라고 정의한 바 있다. 감정은 이익을 창출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되고 소통은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능력이자 모종의 문화 레퍼터리가 된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데도 유익하다. 공감, 소통, 융합, 통섭 등 피차간에 경계를 허물고 함께 하자는 단어가 유행한 지 오래됐고 수많은 ○○ 인문학이 생겨났지만, 사회는 불통의 극한을 달리고 개인은 여전히 고립되고 무시되며 붕괴된다. 소통과 공감을 표방하는 시대에 왜 이런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일까.
 
스테판 메스트로비치는 이를 ‘탈감정사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는 현대인들이 문화산업에 의해 합성된 광대한 범위의 유사 감정을 느끼지만, 사실 그것은 단조롭고 기계적이며 대량생산된 감정이 친절함이나 동정심이라는 윤리로 조작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하고 감정적으로 사이좋게 지내지만 사실상 무감동하다. 사건에 대한 우리의 감정적 반응은 여론형성자들에 의해 이미 마련되어 있다. 사건이 전개되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는 이미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사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알려주고 무엇을 생각하고 느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탈감정사회에서 사람들은 사건에 대한 자발적 감정을 느끼고 행위하는 것이 아니라 형성된 여론을 숙지하고 예상되는 감정을 습득한다. 습득된 감정은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유지하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공유되는 감정을 모르면 그는 점심식사의 대화에서 소외되고, 적절하게 흥분하거나 슬퍼하지 않으면 공공의 적으로 몰리기 쉽다.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는 미리 형성되어 있는 감정의 상태를 습득하고 체화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불통 또한 이와 관련이 있다. SNS가 활성화되면서 우리는 수시로 감정을 표현하라는 요청을 받는다. 온라인망에서 크고 작은 사회적 사건에 대해 호불호를 표시할 수 있고, 댓글을 달 수 있고, 경우에 따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끼리 오프라인에서의 회합을 주도할 수도 있다. 가능한 감정의 양태들은 이미 주어져 있고, 우리는 그 중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 ‘좋아요’에 한 표를 누름으로써 우리는 의사 표시를 다한 것일까. 서로 다른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좋아요’라는 한 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것일까. 하루에도 몇 차례씩 표시되는 우리의 감정은 현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소통이 능력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진정한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자발적인 감정 표현이 사라지면서 행위 또한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즉각적이고 자발적인 감정을 되찾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감정에 적절한 행위를 취하는 것이다.
 
문혜원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중부일보 2014.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