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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죽은 시인의 사회

NEW [칼럼] 죽은 시인의 사회

  • 이솔
  • 2014-12-04
  • 19951
제목의 아이러니로부터 시작하자. ‘죽은 시인의 사회’는 얼마 전 세상을 뜬 로빈 윌리엄스의 연기가 돋보인 수작이다. 영화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는 시인이 살아있는 사회를 꿈꾸는 무리가 만든 비밀 결사 조직의 이름이다. 자유를 억압하는 제도와 사회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이 그것을 비판하고 자유롭게 시를 쓰고 공유하는 회합. 낭만적이고 아마추어적이지만 그래서 그들은 아름다웠고 영화는 고전이 됐다. 그러나 이 글의 제목인 ‘죽은 시인의 사회’는 비밀 결사 이름도 아름다운 젊은이들을 지칭하는 것도 아닌,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직설적인 은유일 뿐이다. 그 많은 시인들은 어디 두고 시인이 죽었다고 말하는가.
 
얼마 전 몸담고 있는 대학의 학보사가 주최하는 고교문예 심사가 있었다. 근 육칠년간 해마다 해오던 일이라 별다른 생각 없이 심사를 수락했는데, 정작 작품을 받아들고는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은 겨우 두 사람의 시. 응모자 수가 턱없이 줄었고 작품의 질도 떨어져서 더 이상 본선에 올릴 작품을 고르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사정을 확인해보니 일반고 학생들의 응모도 줄었지만 해마다 단체로 응모해오던 몇몇 예고 학생들의 작품이 아예 들어오지 않은 것이었다. 늘 상을 휩쓸어가던 예고 학생들이 약속이나 한 듯 아무도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는 것은 놀랍기에 앞서 신기한 일이었다. 세부적인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입시 제도의 변화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바였다. 문예 특기자 전형이 줄어들었거나 인정 범위가 한정되었을 수도 있고, 어떤 이유로 하여 지도 교사들이 응모를 꺼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공통점은 시를 창작하고 응모하는 것이 철저히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창작조차도 입시 전략이 되는 우리 현실이 새삼스럽게 환기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예고 학생들의 세련되지만 종종 진정성이 결여된 작품을 심사할 때 또한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 사실이다. 같은 학교에서 응모한 작품들은 소재나 주제, 수준까지 엇비슷해서 이름을 가리면 서로 섞어놓아도 될 만큼 개성이 없고 뻔했다. 특이한 것은 응모한 시들 대부분의 내용이 어둡다는 것이었다. 뒤틀린 가족 관계와 미움으로 가득한 가정, 실직한 부모와 기울어가는 가계, 가난과 질병으로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 등 파란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넘쳤다. 요즘 청소년 세대가 이처럼 구구절절 복잡한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는지 진정성이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언어를 다루는 솜씨가 월등하게 차이가 나는 작품을 수상에서 아예 제외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가작에 올리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남아있었던 것은, 투박하지만 자신의 눈으로 사회와 인간을 보려고 애쓴 흔적이 있는 몇몇 응모작의 건실함 때문이었다. 응모작 중에는 진심으로 시를 쓰고 싶어하고 앞으로도 쓸 것이라고 짐작되는 순수하고 진지한 작품들도 있었다. 그런 시를 쓰는 학생들을 훗날 문단에서 마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지고 매년 심사를 해왔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제 지나간 풍경이 되는 모양이다. 입시 상황이 변화되면서 학생들은 더 이상 시를 쓰지 않고, 그 시간에 물수능에 대비하기 위해 한 문제도 놓치지 않도록 반복되는 문제 풀이 훈련을 받을 것이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문학 창작을 가르친다는 웹사이트와 개인 과외 광고가 공공연히 나돌고, 기성 시인이 고액을 받고 시를 대필해준다는 고발성 기사가 실린다. 대학 입시만이 아니라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신춘문예 또한 해마다 비슷한 시비에 휩쓸린다. 조야한 테크닉을 가르쳐서 시를 찍어내고, 표절한 시로 입시와 등단이 가려지는 것은 문화의 열등성을 보여주는 한심한 코미디이다. 그러나 입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 창작 자체가 사라져가는 현실은 그보다 더 끔찍한 디스토피아를 보여준다. 시가 재활용 쓰레기보다도 못하게 취급되는 현실 그야말로 ‘죽은 시인의 사회’인 것이다.
 
 
문혜원 아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2014.12.4 중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