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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관록 있는 대통령의 약속 이행

NEW [칼럼] 관록 있는 대통령의 약속 이행

  • 이솔
  • 2014-12-15
  • 19102
이달 초 호세 무히카 코르다노 우루과이 대통령은 쿠바 관타나모 미군기지 수용소의 이슬람교인 재소자 150여명 가운데 6명의 자국 이주와 정착을 지원하겠다고 재확인했다. 지난 3월 무히카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폐쇄를 추진하던 오바마 미대통령의 수감자 수용 요청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수락한 바 있다. 당시 무히카는 수용소 폐쇄와 동시에 간첩 혐의로 미국 교도소에 갇혀 있는 쿠바인 3명의 석방과 푸에르토리코 독립 요구와 관련된 테러 혐의로 34년째 수감 중인 오스카르 로페스 리베라의 석방을 제안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루과이인의 58%가 관타나모 수감자들의 자국 이주에 반대했으나 무히카는 이슬람교인 수감자 6명의 수용을 재확인하고 결국 지난주 이들을 입국시켰다.
 
국제적인 약속을 지킨 79세의 노장 정치인 무히카의 생애는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무히카는 1960~1970년대 좌익 무장 게릴라단체 투파마로스의 대원으로 몇 발의 탄환을 맞은 총격전 속에서 살아남았다. 그는 군부독재 정권에 네 차례 체포됐고 두 차례 탈출에 성공했지만 고문과 옥살이,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렸다. 1985년 민선정부가 복귀하면서 비로소 15년간의 옥살이에서 풀려난 무히카는 급진적인 사회주의적 수사를 누그러뜨리고 투파마로스가 합법적이고 좀 더 온건한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데 기여했다.
 
2010년 3월 5년간의 임기를 시작한 무히카는 30년 가까이 된 소형 폭스바겐 자동차를 몰고 대통령 관저가 아니라 몬테비데오 교외의 허름한 야생화 농장에서 거주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으로 알려졌다. 그는 월급의 10%에 해당하는 1250달러를 쓰고 90%를 자선단체에 기부해왔다. 우루과이인들의 월평균 소득에 가까운 액수로 생활하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난 고집 세고 별난 노인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이는 자유로운 선택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 운운하지만 난 가난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가난한 자란 적게 가진 자가 아니라 욕망에 끝이 없고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하지 않는 이들이다.”
 
무히카는 2012년 6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Rio+20 회담에서도 다음과 같이 역설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빈곤 타파를 위한 우리의 본심은 무엇입니까? 무자비한 경쟁과 무한 소비에 근거한 경제 체제 아래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자는 논의를 할 수 있습니까? 지구를 손상시키는 것은 과소비와 우리가 통제하지 못하는 세계화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큰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니라 정치적인 위기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우리가 만든 사회 모델이며 반성해야 할 우리의 생활방식입니다.”
 
무히카는 혼란스럽고 서투른 태도와 모순적인 발언, 잘 조직되지 않은 정부 운영 탓에 비판을 받곤 했다. 그럼에도 우루과이인들은 대중을 이해하고 그 마음에 다가서려는 무히카에게 대체로 우호적이며, 세련되지 않았지만 진정성 있는 그의 풍모에 경의를 표한다. 게다가 우루과이의 경제는 2005년 중도좌파 연합 ‘확대전선’의 집권 이래 연평균 5.8%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외국인 투자 역시 활발한 편이다. 또 빈곤율은 2005년 이전의 40% 수준에서 최근 13%로 떨어졌다. 임기 말에 무히카는 많은 이들이 헌법의 연임 금지를 아쉬워할 정도로 60%에 이르는 높은 지지율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바마는 수감자들을 받아들인 무히카에게 신념 있는 인권의 옹호자라는 찬사를 보냈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회 변혁의 꿈을 잃지 않고 행동방식을 바꾸며 희망의 실현을 준비해온 관록의 정치가 무히카와 우루과이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존경할 만한 ‘지도층 인사’의 씨가 말라가는 한국 사회에서 지구 정반대편에 사는 이런 인물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든 것은 단지 신자유주의적 전환으로 환치될 수 없는 세계화의 또 다른 얼굴 덕택일 것이다.
 
 
박구병 아주대 사학과 교수
[2014.12.15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