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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미워도 다시 한 번

NEW [칼럼] 미워도 다시 한 번

  • 이솔
  • 2015-01-05
  • 21790
아파트 지하와 1층에 복덕방이 3개다. 주말마다 승강기 하나는 이삿짐 전용이다. 옮기는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학군 영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능 만점자가 여러 명 나온 학교 근처 아파트가 싼값에 나올 리 만무하다.
 
맹자 가족이 세 번 이사했다는 건 아이들도 안다. 주소지 이동내역까지 빠삭하다. 묘지에서 시장을 거쳐 학교 근처로. 부동산 경기 때문이 아니라 자식교육을 위해서였다는데 엄밀하게 보면 결과론이다. 맹모의 자필수기가 아니라 맹자의 성장과정을 추적하다 보니 모친의 교육열도 덩달아 주목받은 거다. 맹자가 세계적 인물이 안 됐다면 엄마의 결단이 과연 빛을 발했을까.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시장에서 자랐다. 돈암시장 126호가 내 ‘이야기 상자’다. 허름한 가게라 봉지나 포장지가 따로 없었다. 시효가 지난 신문, 즉 신문지만 수북했다. 소년에겐 유용한 문화 콘텐트였다. 당시 신문 하단은 영화광고가 태반이었다. 가위로 오려 스크랩한 제목들이 기억 속에 견고하다. ‘아낌없이 주련다’ ‘떠날 때는 말없이’ ‘미워도 다시 한 번’. 나는 이 21자가 인생수업에도 요긴하다고 생각한다. 멜로의 3대 요소, 즉 사랑과 이별, 그리고 용서(때로는 복수)를 대표하는 제목들이라 그럴 것이다.
 
다시 맹자네로 건너가자. 맹모는 ‘이사의 여왕’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다. 성질이 불같은 분이다. 아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자 화를 내며 베틀의 실을 확 잘라버렸다(斷機之戒). 고약한 아들 같았으면 “엄마 미쳤어?”라고 대들 텐데 역시 될성부른 나무는 달랐다. 맹자는 크게 반성하고 다시 학문에 정진했다.
 
뉴스 보기 싫다는 사람이 주위에 늘어간다. “애들이 보고 배울까 겁난다.” 쏟아져 나오는 사건들을 보며 엄마들이 걱정한다. 하지만 이런 때야말로 교육하기 참 좋을 때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되었을까?” “저렇게 말하는 게 최선일까?” 차분하게 문답놀이 하는 게 산교육이다. 바쁘다고 대화의 골든 타임을 놓쳐버리면 나중에 아이가 사건의 당사자가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나는 올해의 슬로건을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제안한다. 지금 세상은 시비지심, 수오지심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다. 편이 갈리고 미움은 넘치고 그것이 지속된다. 추를 약간 반대 방향으로 밀어보는 건 어떨까. 맹자가 강조한 나머지 두 마음, 바로 측은지심, 사양지심으로 마음의 균형을 잡아보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5.1.5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