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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늘은 다 껴안고 사네

NEW [칼럼] 하늘은 다 껴안고 사네

  • 이솔
  • 2015-01-12
  • 21762
흥행에 신경 안 쓴다고 말하는 감독. (혹시 상 받는 게 목표?)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PD. (‘정의구현PD단’?) 시대를 걷어차는 이에게 진심을 보이라고 쏘아붙이지 말자. 자신감과 사명감이 문화 판을 갈아 끼우는 경우를 꽤 보지 않았는가.
 
대학은 어떨까. 일단 과목에 따라 규모가 다르다. 전공필수는 예비군훈련 비슷해서 의무감으로 가르치고 배운다. 선택과목은 좀 다르다. 넘쳐도 모자라도 걱정이다. 적정수를 넘으면 피차간에 힘들다.
 
반면에 ‘옹기종기수업’은 다음 학기를 기약 못한다. 폐강은 교수의 미래에 위협적 요소다. 붐비는 교실엔 이유가 분명하다. 지루하지 않다는 소문, 취업에 도움 된다는 증언. (상대평가라 학점은 별개 문제.) 어쭙잖은 PD 본능은 시청률 추구의 관성을 일시에 제거 못한다. 수강 신청은 몇 명이나 했나? 수업만족도는 어떤가? 주객전도까진 안 가더라도 곁눈질 안 할 도리가 없다. 
 
지난 학기 콘텐트제작워크숍의 수강 인원은 딱 10명이었다. 이건 정말 행운이다. 첫 시간에 이름은 물론 특성까지 대충 파악했다. 한눈에 봐도 약은 아이들, 약한 아이들이 뒤섞여 있다. 설문지 답변을 읽으며 수업의 최대공약수도 가늠할 수 있었다. 세 개의 작품을 각자 혹은 팀별로 기획 제작하고 토론·평가했다. 그래도 시간은 부족하다. 이럴 때 하는 말. “종강은 없다.” 방학 중에도 수업을 한다는 말에 학생들은 화들짝 놀란다. 그러나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종강만 없는 게 아니다. “출석체크도 없다. 시험도 없다. 보강료도 없다.”
 
이래서 이루어진 게 미니 수학여행이다. 이름하여 ‘문화콘텐트 답사’. 수강생 전원은 1월 7일 오전 두 개의 미니밴에 나눠 타고 대한민국 종단에 나섰다. 최종 목적지는 국제시장 꽃분이네. 운전병 출신의 복학생이 셋이나 있으니 안전은 안심이다. 퀴즈도 하고 시조백일장도 하고 뒷담화도 즐기니 시간은 바퀴처럼 잘도 굴러간다. 
 
학생들이 잡은 첫날 숙소 이름이 ‘하늘터밭’. 공교롭게도 아침에 받은 문자선물(‘시로 여는 아침’)이 정세훈 시인의 ‘천성(天性)’이었다.
 
“하늘은/ 작은 구름/ 큰 구름/ 다/ 껴안고 사네.” 그러고 보니 펜션 이름도 다분히 교육적이다. 돌아보자.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가, 그르치는가. 경쟁자였다가 어느 순간 계산기를 버린 학생들은 ‘하늘터밭 작물’처럼 그저 사이좋게 떠든다. 웃음이 구름처럼 피어난다.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2015.1.12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