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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인칼럼

[칼럼] '다지선다'의 오류

NEW [칼럼] '다지선다'의 오류

  • 이솔
  • 2015-01-19
  • 22199
지금은 하지 않지만 꽤 오래전에는 기말고사를 앞둔 학생들에게 늘 이런 질문을 했다. 이번 기말고사에서 객관식과 주관식 중 어떤 유형의 비율을 더 높게 할지 말이다.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 주관식 대 객관식 비율을 7대3, 5대5 혹은 3대7 등으로 여러 개의 대안을 제시해주었다. 어떻게든 선택은 이루어졌다. 사실 거의 10년 전이라 학생들이 어떤 안을 선택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나는 것은 시험이 끝난 후 꽤 많은 학생이 이런 건의를 담당 교수인 필자에게 했다는 사실이다. “시험문제 출제 방식을 바꿔달라”고 말이다.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꾀가 좀 생긴 필자가 그다음 학기에는 양자택일로 갔다. 주관식 70% 안과 객관식 70% 안. 이렇게 단 두 가지를 놓고 말이다. 이번에도 수는 좀 줄었지만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수의 학생들이 불만족스럽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그래서 그다음 학기에는 이렇게 물었다. 주관식 70% 안에 찬성하는지 여부를 말이다. 그랬더니 학생들이 반대를 했다. 그런 다음 객관식 70% 안을 물었다. 이번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찬성을 했다. 그리고 시험문제의 객관식·주관식 출제 비율에 대한 어떤 불평도 듣지 않았다. 
 
학생들이 바보가 아닐 텐데 왜 이렇게 뚜렷한 차이가 먼저 두 학기와 마지막 학기에 났을까? 사실 필자의 강의를 수강하는 그 세 학기의 학생들은 각각 인간의 선택이 작동하는 원리에 충실했을 뿐이다. 선택의 대안이 많을수록 선택된 것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지기 십상이라는 현상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왜냐하면 선택되지 않은 것들에서 볼 수 있었던 많은 매력적인 것들이 현재 선택된 것과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대안 중 선택된 것이 오히려 더 미움 받는 것이다. 실제로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조직에 들어온 신입들에게 우리는 더욱 실망하지 않는가. 
 
미국 스와츠모어 칼리지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베리 슈워츠(Berry Schwartz)는 이를 따끔하게 꼬집는 에피소드 하나를 즐겨 이야기한다. 슈워츠는 ‘선택의 역설(The Paradox of Choice)’의 저자로서 선택의 폭이 넓어짐에 따른 판단의 함정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이론과 더불어 설명해 오고 있다. 휴양지에서 좋은 날씨와 맛있는 음식을 만끽하면서도 꽤 많은 사람들이 휴가철로 인해 한적해진 자기 동네에서 좋은 위치에 주차할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실마리는 필자의 바로 그 세 번째 학기 수강생들에게 있다. 그들에게는 무언가 질적으로 다른 선택의 기회가 하나 더 주어졌다. 받아들일지 말지도 말이다. 이는 여러 개의 대안 중 하나를 무작정 선택하는 것과는 분명히 다른 심리적 책임감을 선택자에게 부여해 선택을 훨씬 더 현명하게 만든다. 그러면 후회할 선택을 할 확률도 확연히 줄어든다.
 
물론 이런 과정을 추가하면 시간을 비롯해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선택된 인물이나 대안이 조직 구성원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면 리더는 심각하게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 돌아가는 것 같지만 훨씬 더 가깝게 가는 길을 한번 더 선택하게 해서 열어줄 수 있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2015.1.16 매일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