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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3년도_우수_[노사관계]_정대용교수

  • 이종원
  • 2014-02-10
  • 15741

경영학과_함유미

 

    꿰뚫어보는 듯한 눈, 굳게 다문 입술, 전체적으로 무언가 단단해 보이시는 정대용 교수님을 처음 뵈면 자기도 모르게 땀을 삐질 흘릴지도 모른다. 첫 수업 날 첫 마디도 학생들이 너무 많은데…….’였다. 이렇듯 교수님의 수업은 언제나 경고로 시작한다. “영어로 된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내가 하는 말이 이해가 안 된다면 드롭을 하는 게 낫습니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을 학생은 들어오지 마세요.”

    일순간 학생들 사이에는 찬바람이 휑하니 분다. 나도 모르게 목구멍으로 침이 꼴깍 넘어가고, 자세를 바로하게 된다. 뿐만 아니다. 갑자기 주변 사람들이 모두 영어능력자로 보이는 게 아닌가? 그냥 포기할까하는 생각이 잠깐 스쳐지나간다. 수업을 나서는 발걸음도 책가방 못지않게 무겁다. 내가 이걸 왜 신청했을까하는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것이 내가 처음 정대용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던 20131학기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난 학기에 또 한 번 교수님의 수업을 선택했다. 수업이 쉬웠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쉽지 않은 수업임을 알면서도 배우는 것이 많다는 깨달음을 얻어서다. 사실 그 전 수업인 조직행위론을 원어로 들었을 때도 공부하는 내내 머리를 싸맸고, 좋은 수업이긴 하지만 다음에는 좀 여유로운 수업을 들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 역시 괴로웠던 그 때의 기억은 시간 속에 묻어버린 지 오래였다. 대신 제대로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정말 듣고 싶었던 수업들로 시간표를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방학이 지나고 오랜만에 뵌 교수님은 여느 때처럼 에너지가 넘치셨다. 그 모습을 보면 학생들도 수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특이한 것은 교수님의 수업은 항상 준비된상태로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교수님의 수업 평가 방식을 보면 중간고사 35%, 기말고사 35%로 가장 크고, 수업시간에 보는 pop quiz10%를 차지한다. 퀴즈를 언제, 몇 번 볼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교재를 미리 읽어 와야 한다. 이 부분은 정말 밑줄 쫙이 필요하다. 교재는 정규 수업 책과 case study로 이루어진 course pack이 있다. 그렇다고 범위도 모른 채 무작정 책을 읽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교수님 수업계획서를 보면 날짜별로 어떤 부분을 공부할지, 생각해볼 문제가 무엇인지 세세하게 나와 있다. 멀리 준비할 것도 없이, 딱 다음 시간 부분만 공부해오면 된다. 하지만 그 다음 시간을 위한 공부의 양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보통 2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 게다가 각 국가의 노사 관계에 대해 서술한 책이니 이해하는 데만도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pop quiz 때문만이 아니다. 또 한 가지, 교수님의 수업평가에서 중요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출석 및 참여점수다. 본격적인 수업시작하기 전 혹은 수업 중에 교수님께서 전체적으로 질문을 던지신다. 어렵지는 않지만 미리 책을 읽어오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수업이 강의와 토론 방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작은 그룹을 만들어 앉아 준비된 질문에 대해 서로 토론해야 한다. 예습이 안 되어 있으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교환학생들이 섞인 수업에서 혼자만 한심하고 부끄러운 학생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영어로 말하는 것이 힘들다거나 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잘하는지가 아닌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는지. 그렇기 때문에 영어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얼마든지 노력으로 이 과목을 수강할 수 있고,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만큼 시간을 투자할 의지만 있다면 말이다. 교수님께서 절대평가를 고집하고 계시기도 하니까.

    수업을 들으며 인상적이었던 것은 끊임없이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시는 교수님의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이해가 안 되는 것 같은 표정을 짓거나 질문을 하면 교수님께서 이해가 될 때까지 설명해주신다. 그래도 모르겠다고 하면 교수님께서는 다음 시간에 더 적절한 예를 찾아서 설명해주시겠다고 말씀하시고, 잊어버리시지 않고 다음 시간에 꼭 설명을 해주신다. 이해를 못 하는 학생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모습이 어째서 뇌리에 그렇게 깊이 박혔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찍부터 너무나 쉽게 학생들을 포기하는 교사들을 보아와서일까.

    학기의 중반쯤 다다르면 교수님은 종이를 나눠주시며 학생들에게 익명의 피드백을 요구하신다. 학기 말에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수업 전에 학생들의 피드백에 답변하는 시간도 있다. 이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어딘가 교수님만의 방식에 대한 고집과 자부심이 느껴졌다.

    교수님의 수업을 듣고 나서 나라는 사람이 어딘가 거창하게 변화한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 수업에 임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이는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처음에는 답을 알면서도 우물쭈물 손도 못 들던 한국 학생들이 수업을 마칠 때쯤이면 너도나도 손을 드는 광경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설사 대답을 잘 못하더라도 교수님께서 학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딱 아시고 영어 문장을 완성해주신다. 누구나, 특히 한국 사람이라면 더욱 자기가 공개적으로 틀리는 것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다. 하지만 이 수업에서만큼은 잘못 말하는 것이 그렇게 부끄럽지 않았다.

    1/3, 혹은 수업을 듣는 학생의 절반이 교환학생들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영어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는 않을지라도, 그룹 토론시간에 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 하는 것이 더 이상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교수님께서도 수업 시간에는 오직 영어만 사용하도록 최선의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신다. 친하게 지내는 한국 학생들을 떨어져 앉게 하시고, 프랑스어로 대화하는 프랑스 학생들에게는 칼 같은 경고도 날리신다. 한국 학생과 외국인 학생을 섞어 앉게 하시는 교수님 덕분에 나도 외국인 친구들을 몇 명 사귈 수 있었다. 수업 첫 시간에 잠깐의 다과회를 갖고, 추석 같은 명절에는 같이 떡도 나눠먹고, 수업 마지막 날엔 사진도 찍고……. 이렇게 다문화 학생들이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셨기에 더 즐거웠던 수업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노사관계에 대해 지식을 쌓으면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파업사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예전에는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을 그저 사회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노사관계를 배우면서 단순한 파업이라는 현상이 아닌 그 바탕에 깔려있는 사회 구성원들의 이해관계, 노동조건과 처우 등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저 학점을 따기 위해 시험기간에만 반짝 공부하고 말았다면 여전히 나는 이런 사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교수님은 이런 나에게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것은 나 역시 수업목표를 이뤘다는 의미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대부분 관리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상 관리자가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어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는 말씀도 함께.

    노사관계 수업이 끝난 날, 한 무리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놀러가려고 택시를 탔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너는 Dan(정대용 교수님 영어 이름)을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어서 무슨 의도로 물어보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교수님이셔. Dan 같은 교수님은 한국에 많지 않아. 그런데 왜 물어보는 거니?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러자 그 외국인 학생이 갑자기 웃으면서 나도 그렇게 생각해. 프랑스에도 이렇게 오픈 마인드의 교수님이 많지 않아.”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외국 학생들에게도 우리 교수님이 인정받았다는 자랑스러움과 그 친구들에게 한국에 대해 좋은 기억을 한 가지 더 남겼다는 뿌듯함에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모른다.

    정대용 교수님의 수업은 정말 많은 것을 내게 남겨주었다. 이제 나는 고학년이 되었고,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학생이 되었지만, 학교를 다니면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강의를 들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수업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포기할 정도로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매번 미리 예습을 해가고, 수업시간에 다시 나눔으로써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확신한다. 교수님이 워낙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셨기에 나 역시도 열심히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 학교에도 좋은 교수님들이 많으시고, 좋은 강의도 많은데……. 다른 많은 학생들이 원어강의라는 부분 때문에, 혹은 그저 더 좋은 학점을 위해서 이런 좋은 강의를 놓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리고 졸업 전에 정대용 교수님의 강의는 한 번쯤 들어보았으면 한다. 고생한 만큼 보람이 뒤따르는 이 강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