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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6년도_우수_[생산시스템운영 및 실습]_고정한교수

  • 유남경
  • 2017-01-23
  • 9259

1.문제를 쓴다.
2.매우 깊게 생각한다.
3.답을 쓴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이 제시한 문제를 해결하는 알고리즘이다. 우리는 보통 2번과 3번 항목을 학창시절 내내 배워왔다. 사실 2번 항목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우리는 주어진 문제에 최대한 빠르고 정확하게 답할 수 있도록 요구되어왔다. 하지만 파인만의 알고리즘을 일상생활에 빗대어 보면 어떨까? 삶 속에선 지금까지 해온 공부와는 다르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누구도 문제를 정의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가 직접 정의하고 생각하고 풀어야 한다. 특히나 ICT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2,3번의 경우는 컴퓨터가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앞으로 인간이 마주할 많은 문제의 범주는 1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마주할 변화하는 시대와는 달리 우리의 현재 교육 시스템은 대부분 과거의 시스템과 다르지 않다. 선생은 가르치고 학생은 배우는 일방적인 방향의 수업으로 진행이 되고 있고 학생은 주어진 문제를 별다른 고찰 없이 기계적으로 풀어 나간다.

나는 이번학기 그리고 지난학기 까치 합쳐 1년 동안 생산시스템 설계 및 실습부터 생산시스템 운영 및 실습 이라는 과목을 고정한 교수님께 수강했다. 고정한 교수님은 문제에 대한 답만을 제시하는 교수님이 아니다. 학생이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교수님이다.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통해 문제가 어떤 것인지 정의하고 어떻게 답을 찾을 수 있는지 제시해 주신다.

기본적인 가르침은 다른 수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산시스템과목은 생산 시스템과 관련된 여러 가지 개념과 설계 방법에 대하여 배우는 과목이다. 교수님은 가르쳐 주시고 학생은 배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교수님은 시스템에 관련된 개념이나 수학적 공식이 나왔을 때 학생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노력하신다. 예를 들어 생산시스템 안에서 사용하는 공식이 있다고 하자. 교수님은 이 공식을 사용하게 된 이유를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신다. 이 때 교수님이 들어주신 예는 아주 단순하고 쉬운 예다. 우리가 곱셈을 배운다고 가정한다면, 대부분의 수업은 구구단을 암기하고 여러 가지의 수학문제를 푸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생산시스템 수업에서는 덧셈의 원리부터 설명한 뒤 덧셈으로부터 곱셈으로의 진화 과정을 쉽고 간단히 설명한다. ‘두 명씩 다섯줄로 서있는 학생의 수를 셀 때 2+2+2+2+2 = 10이 되고 이는 2 * 5 와 같다이런 식이다. 이런식의 가르침으로 학생은 단순히 공식을 이해하고 암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이런 공식이 나왔는지, 어떤 상황에서 이런 공식을 이용 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수업을 듣다보면 한 부분의 내용에 갇힌 채 전체적인 내용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의외로 이런 경우는 자주 생기는데 고정한 교수님은 중간 중간 전체적인 시야를 제시함으로써 학생이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숲을 볼 수 있게 도와주고 앞으로 배울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킨다.

텀프로젝트도 다른 수업과는 달랐다. 텀프로젝트는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3~4인이 한 팀을 이루어 생산프로젝트 시뮬레이션 게임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 시뮬레이션 게임에선 우리가 어떤 공식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가이드를 주지 않는다. 생산시스템 운영에서의 전체적인 전략제시부터 운영 중에 생기는 여러 문제들을 정의하고 풀어내는 것 까지 모두 학생들에게 달려있다. 시뮬레이션 게임은 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마지막에 많은 수익을 남긴 순서대로 등수가 매겨지는 방식이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점수가 매겨지는 방식은 등수가 높은 순서대로 매겨지는 것은 아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이 끝난 뒤 게임을 돌아보았을 때 어떤 점에서 우리 팀이 잘하고 잘못했는지 또 잘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했다면 지금의 결과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는지 분석과 고찰을 통해서 보고서를 잘 쓰는 팀이 좋은 점수를 가져갈 수 있다. 결국 시뮬레이션 게임의 등수가 아니라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얼마나 많이 배우고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실제 운영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아는 팀에게 높은 프로젝트 점수가 주어진다.

시험에서도 교수님의 교육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실 대부분의 과목은 소스라는 것이 존재한다. 소스라는 것은 보통 과거기출문제 혹은 과거 시험과 연관되어 있는 정보를 학생들이 일컫는 말이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이 해마다 거의 비슷한 문제를 혹은 비슷한 패턴의 문제를 내기 때문에 소스는 시험성적에 영향을 꽤 미치는 편이다. 적어도 가지고 있다면 시험공부를 편하게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소스를 모든 학생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주로 소스는 선배나 같은 과목을 먼저 이수한 동기들에게서부터 받게 되며 시험공부와는 별개로 소스를 구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시험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고정한 교수님의 수업에선 소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유는 교수님이 소스를 직접 뿌리신다. 1학기, 2학기 수업 모두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교수님이 과거 3개년 정도의 시험 기출문제를 프린트로 나누어 주신다. 때문에 소스를 얻은 자와 얻지 못한 자의 차이가 고정한 교수님의 수업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이유는 매 해 바뀌는 문제와 유형 때문이다. 교수님의 수업은 매해마다 집중하여 가르치는 포인트가 다르다. 문제 유형도 해마다 변경되기 때문에 과목자체가 시험의 소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생산시스템수업의 시험은 오픈북 베이스로 치르게 된다. 오픈북 시험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시험평균이 높은 편은 아니다. 책을 보고만 쓸 수 있는 답은 한정적이고 책에 나와있는 공식을 왜, 어떻게 쓰는지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면 답을 적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순한 암기식의 공부는 고정한 교수님 수업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고정한 교수님의 수업은 많이 읽고 깊이 생각하는 시험으로 정평이 나있다.

고정한 교수님의 이런 교수법을 통해서 나는 공부하는 법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내 모습은 공식을 외우기 바쁘고 시험을 치르기 바쁘고 시험이 끝난 뒤 까먹기 바빴다. 하지만 이 수업을 듣고 난 후 더 이상 무의미한 암기만을 쫓진 않는다. 적어도 내가 공부하고 있는 공식이 어디에 쓰이고 어떻게 쓰이는지, 그리고 전체적인 시스템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물론, 이런 방식의 공부를 통한다고 해서 시험 뒤에 공부한 내용이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해결방안이 제시되어 있지 않은 다른 문제를 마주쳤을 때 이건 내가 공부한 방법이랑 비슷한 방법으로 풀 수 있겠는데? 어떻게 풀었었지?’ 할 정도의 깜냥은 생겼다. 처음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앞으로의 세상에선 단순히 문제를 풀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이런 방법은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훈련방법의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안타까웠던 점은 학생과의 활발한 상호작용을 원하는 교수님의 바람과는 달리 아직 그런 수업방법에 적응하지 못한 우리였다. 더 좋은 수업을 위해서는 교수님의 노력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도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며 일년 동안 좋은 수업을 해주신 고정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생산시스템은 2학년 때 처음으로 듣는 전공과목이다. 본격적으로 전공과목을 듣기 시작하는 2학년들에게 꼭 필요한 과목이라 생각한다. 산업공학의 목표와 앞으로 배울 전공들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며 왜 배우는지 어떻게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산업공학과의 이정표가 되는 과목이다. 이런 과목을 훌륭한 교수님께 배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