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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7년도_입상_[글쓰기]_정홍섭 교수

  • 박민경
  • 2018-02-05
  • 5936
 글쓰기 수업에 대한 나의 감상을 서술하기 전에, 먼저 내 이야기를 조금 할 필요가 있겠다. 스무 살, 그리고 스물한 살의 나는 굉장히 활달했고, 사교적이었으며, 거침없었다. 그 때문에 휴대폰엔 쌓이는 연락처 수에 반비례하게 학점은 바닥을 쳤다. 이전 대학에서는 그랬다.

  스물 네 살이었던 2016년 초부터 독서실에서 재수를 시작했다. 그 땐 철저히 나 혼자였다. 스무 살 때 쌓았던 표면적인 인연들은 군대라는 필터링을 거치고 나니 몇 남아있지도 않고, 늦은 나이에 재수를 한다는 그 부담감 외에도 수많은 감정들이 나를 힘들게 했다. 특히나 외로움, 어디다 터놓고 말 할 데 없는 내 처지에서 비롯된 사사로운 감정들이 나의 성격을 많이 바꿔놓았다. 말주변이 없는 성격이 아닌지라 외로운 생활 속에 순간순간 생기는 수많은 감정의 폭발들을 말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적당한 방법을 찾았는데,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감정들이 나를 덮치는 상황이 올 때 마다 나는 글을 썼다. 무슨 말이든 좋았다. 내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담아보려고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고민을 했는데 아이러니하게 그것이 내 해방구가 되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 자체를 즐기게 되었던 것 같다. 글을 쓸 때 연필심이 종이를 누비는 소리, 썼다 지우면서 더 좋은 표현이 나오는 그 만족감. 글을 완성하고 나면 일상 속에서 멋진 장면을 카메라로 기록할 때의 쾌감보다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밀려왔다. 내 손으로 추상적인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의 매력은 그랬다. 그렇게 일 년 내내 나의 가장 솔직한 벗이 되어주었던 글쓰기와 함께 재수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여기 아주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처음에 수강신청을 하는데 글쓰기가 필수과목에 있었다.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나만큼 글쓰기의 즐거움을 직접 체험해본 학생이 얼마나 되겠나 하는 괜한 자신감도 있었고, 잘 할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내 새로운 1학년 1학기가 시작되었다.

 글쓰기 수업 첫 시간이 생각난다. 선한 인상의 정홍섭 교수님께서 들어오시고, 소개를 칠판에 판서로 하셨는데 중후한 멋짐이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는 첫 날이니 수준평가를 한번 해 보자고 하셨다. 사실 명목상 수준평가였고, 글이란 것을 한번 부담 없이 자유롭게 써 보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의도라고 하셨다. 나는 그 한마디로 이 수업이 내 1학년 1학기의 최고의 수업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써서 냈다. 사실 내가 이런 확신을 가졌던 이유는 내가 ‘글쓰기’라는 수업에 전혀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직관적으로 받아들였던 수업의 느낌과 교수님이 지향하는 방향이 일치할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는데, 그 다음 수업부터는 느낌이 좀 달랐다.

 자유로운 글쓰기를 바탕으로 튜터링과 피드백의 향연일 줄만 알았던 글쓰기 수업은 점차 과업들이 생기면서 나의 글쓰기에 대한 인식 또한 즐거운 글쓰기에서 의무적인 글쓰기로 그 성격을 달리하기 시작했고, 글쓰기 시간이 조금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런 마음이 드는 무렵, 첫 시간에 써냈던 수준평가의 결과물을 받아볼 수 있었다. 앞서 말한 대로 나는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이 차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내가 받아든 교수님의 평가는 처참했다. 모든 역량에서 ‘보통’ 수준의 지표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괜찮은 척 했지만 그 때 내가 써서 낸 결과물이 평상시에 내가 글을 쓸 때의 결과물과 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이게 내 절대적인 글쓰기 능력의 위치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이 점차 진행되면서, 교수님의 따뜻한 관심과 지도로 처음의 좌절이나 두려움은 봄 날씨와 함께 누그러져갔다. 수업을 통해 내가 얻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글쓰기를 대하는 방법이었다. 글쓰기에 정형화 된 방법은 없다지만 이전까지 내가 해온 것은 철저히 감정배출을 목적으로 하는 끄적임에 불과했다면 교수님은 글에 힘을 싣는 방법을 가르쳐주려고 노력하셨다. 비평문과 수필, 요약문 쓰기 등 여러 형태의 글쓰기 과제들을 수행하면서 어느 순간에서 어떠한 글 방식을 채택하여 써야 하는지 배웠고, 글 방식에 따른 적절한 문체나 기본적인 틀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다. 글이라는 분야에 대한 좀 더 넓은 안목을 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간고사 기간 즈음엔 교수님의 스타일에 완전히 적응하면서 내가 글쓰기를 대하는 자유로움과 교수님의 애정 어린 피드백이 시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교수님은 주장할 때나 설명할 때, 반박할 때, 요약할 때 등 어느 상황에서나 근거를 갖고 글을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맞춤법이나 글의 구성은 그 다음, 디테일한 표현은 가장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전에 내가 감정 표현에만 애쓰는 글쓰기를 할 때는 오로지 디테일한 표현에만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그러나 정말 내 글이 힘을 가지려면 우선적으로 내 말이 신빙성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고, 이는 내가 글쓰기에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글쓰기 수업은 단순히 글을 쓰는 것 외에도 나에 대한 반성과 내 주위에 대한 사소한 관찰들을 하게 해 주었고, 정말 시대가 원하는 ‘인문학적 소양’ 이란 어떤 개념인가 어렴풋이 체득하는 계기가 되어 준 수업이다. 그런 체험들이 있고 나서, 이론적인 배움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 내 문제점의 구체적인 부분들을 보완해 나갔다. 이런 교수님의 열정어린 지도가 아니었다면 아직도 ‘내가 하는 글쓰기 방식이 가장 좋다’는 식의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태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수업이 글쓰기에 대한 내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게 한 수업은 아니다. 중간고사를 치르고 수필을 쓰는 시간이 있었다. 사실 수필은 내가 자주 써오던 장르의 글이라고 생각되어서 일상적 체험을 기록한 글을 쓴 다음 교수님의 가르침을 토대로 퇴고를 거친 뒤 제출했는데, 그냥 넘어가기 쉬운 소소한 표현에도 교수님은 칭찬을 해 주셨다. 배웠던 내용 중에 본디 글쓰기의 성질 중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있다는 것을 배운 뒤라서 당시 나의 멘토였던 교수님의 칭찬을 받으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렇듯 교수님은 학생이 가진 문제점은 교수로서 전문가의 관점에서 지적해주고, 세심한 칭찬으로 학생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좋은 선생님의 역할을 해 주셨다.

 글쓰기 수업은 크게는 ‘대학 생활에서 익혀야 할 논문 형태의 글쓰기 방식과 정형화 된 글쓰기’이지만, 어떤 자세로 수강하느냐에 따라 살아가는 자세를 배울 수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즘 같은 정보 범람시대에 떠다니는 수많은 글들 중에서 내 글이 매력 있는 글이 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충분한 근거가 필요하고, 그 근거는 내 노력이고 그것은 곧 내 주장의 힘이 된다는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글쓰기가 단순히 감정 해소의 방법으로만 작용하던 이전의 나로서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이 점이 가장 큰 가르침이 아닌가 싶다. 글쓰기처럼 개인의 주관을 많이 반영하는 것일수록 자신의 견해만 고집하기 쉬운데, 좋은 수업, 좋은 교수님을 만나서 반성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글쓰기는 퇴고를 거칠수록 좋은 글로 수렴하게 되고, 사람은 반성을 많이 할수록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앞으로도 글쓰기를 통해 배운 이치를 삶에 적용하며 열심히 학교생활을 하고, 나아가 사회인으로서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