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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7년도_우수_[살아있는 미술관]_이동재 교수

  • 박민경
  • 2018-02-05
  • 6043
 제목:  메마른 일상에 물을 주다

  아주 가끔, 예고 없이 찾아온 일이 일상에 큰 파문을 일으킬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은 보통 자신의 가치관과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과도기로 이어진다. 이 시간은 때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실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시기가 삶의 한 부분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자, 스스로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키는 공부, 틀에 박힌 공부, 오직 수능만을 위한 공부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얻게 된 자유로움이 당황스러웠다. 많은 부분이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졌고, 그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선 반갑기도 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들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미술관’ 첫 수강 신청을 할 때 보았던, 매우 오글거렸던 강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미술관이라는 단어에 매료되어 앞뒤 가리지 않고 신청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시간 날 때마다 방문했던 곳이 미술관, 박물관이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이 공간들이 익숙하고 편안했으며, 수험생이었던 작년에도 힘들 때 마다 찾던 곳이 바로 미술관이었다. 내 첫 번째 선택이 나에게 매우 잘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동시에 한편으로는 도대체 미술관이라는 주제로 무슨 수업을 할지 매우 의문이 들었다. 
  수업은 매우 특별하게 진행되었다. 우선 강의실 수업이 격주로 있었고, 강의실 수업이 없는 주에는 교수님의 지인과 함께 유명한 미술관들과 그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품들을 보는 현장 수업을 했다. 나에게는 매우 익숙한 곳들을 주로 방문했는데 대표적으로 삼성의 리움 미술관이나 덕수궁 미술관 등이 그러했다. 나들이를 가듯이 수업을 들었다. 특히 교수님과 전문가 분들이 미술관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그리고 각 전시가 무엇을 목표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주셔서 혼자 혹은 가족과 관람할 때 보다 더 깊이 있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었다. 관람 후에는 자유로운 토론 시간도 있었는데 딱히 질문이 없더라도 자신이 느낀 것을 말하고 다른 학생들과 공유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대답이 자유롭게 나오지 않았지만 매주 같은 학생들과 현장수업을 다니다 보니 서로 익숙해지며 점점 많은 대화가 이루어졌다. 공대생들에게는 특히나 익숙하지 않은 예술 분야의 전시회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현장 수업 후 돌아오는 강의실 수업시간에는 실제로 보고 온 작품들과 관련된 해외 작품들을 보며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항상 인색하다.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혹시라도 자신의 질문에 남들이 이상하다고 비웃을까봐, 쉽게 입을 떼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을 가릴 수 있는 SNS에서는 전 세계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야기하고, 문제를 던지며 피드백을 하곤 한다. 1년 동안 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며 가장 문제점이라고 생각했던 점이 바로 이것이기도 했다. 분명히 의견 교환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많은 학생들이 침묵을 선택했다. 특히나 예술과 관련된 수업은 객관적인 사실도 분명 중요하지만, 작품에 대한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의견 교환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교수님은 이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셨다. 수업을 듣는 모든 학생들을 포함해 단체 톡방을 개설하고, 수업시간에 빔 프로젝터를 사용해 이 톡방을 화면에 매우 크게 띄우셨다. 그리고 수업을 진행하셨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학생들도 금세 익숙해져 육성으로 수업을 들으며 톡방에서 즉각적인 의견 교환을 시작했다. 어떤 학생이 감상을 말하면 다른 학생은 그 감상과 관련된 사진을 올리고, 이 사진이 진행되고 있는 수업과 관련이 있는 경우 교수님께서 바로 피드백을 해 주셨다. 이러한 형식에도 부담을 느끼는 학생들은 매 수업마다 A4용지 한 장에 수업을 들으면서 느꼈던 자신의 생각들을 어떠한 형식으로든 표현해서 제출할 수 있었다. 글은 물론이고, 스케치와 만화 심지어 기호들까지 자신이 느낀 것이라면 무엇이든 괜찮았다. 실제로 교수님도 글로 써서 낸 필기보다 그림과 기호로 이루어진 필기를 더 선호하셨다. 틀에 맞춰서 가공되지 않은, 날것으로서의 학생들의 생각을 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나 또한 처음에는 어색하여 글로 쓴 필기를 내다가 나중에는 수업에 나왔던 현대미술 작품들을 보며 끄적인 낙서를 내기도 하고, 책상을 뒤집어엎고 있는 사람을 그려서 내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방식의 소통은 교수님이 우리를 더 빨리 기억하도록 만들었고(실제로 매우 빨리 우리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셨다), 매 시간마다 저번시간에 제출했던 필기 중 인상적이었던 내용에 대해 바로 피드백을 해 주시기도 했다. 
  많은 예술 작품을 보고 스스로 이해하는 것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다른 이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표현하는 방법을 반드시 배워야 하는 건축학도로서 ‘살아있는 미술관‘이라는 강의는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고 정형화 되어 있지 않은 생각을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글이나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전공과목 시간에 주로 다루던 ’거주 목적으로서의 건축‘이 아닌 ’예술로서의 건축‘이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갖는지를 많은 현대미술 작품들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예술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세계 각지의 건축물(미술관)들을 접하며 현재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많은 건축가들의 작업 또한 접할 수 있었다. 아울러 학기 중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방문하기 힘든 미술관에 주말마다 갈 수 있다는 점이 행복했다. 지칠 때 마다 다시 생기를 되찾게 도와주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살아있는 미술관’ 수업은 그동안 드문드문 알고 있는 미술사 지식들을 연결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현대 미술과 건축을 함께 생각하는 연습을 하도록 만들었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다시 한 번 이 강의를 들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