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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8년도_입상_[섹슈얼리티와 한국사회]_마정윤 교수

  • 사충원
  • 2019-02-27
  • 4210
제목: 성(性)스럽고 뜨겁게
                                           
   性. 2018년의 가장 뜨거운 화두 중 하나. 지난 한 해동안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을 넘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다양한 젠더의 스펙트럼이 혐오와 함께 고개를 들었다. ‘남혐(남성혐오)’와 ‘여혐(여성혐오)’로부터 시작된 젠더 갈등은 퀴어와 페미니즘(여성주의)와 관련된 문제로 까지 이어졌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분위기가 굉장히 낯설었다. 성별은 남성,여성, 기타 등등으로 이루어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양한 성적지향과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색했다. 그들의 정체성과 성적지향에 동의하느냐 동의하지 않느냐, 혹은 존중하느냐 존중하지 않느냐의 차원이 아니라 성에 대해 이토록 격렬하고 감정적인 갈등을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는 것 자체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하는 것이 더 옳겠다. 
  기본적으로 본 강의는 인권에 대해 다루였다. 흔히 인권을 천부의 권리, 즉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권리라고 표현하지만 본 강의에서는 오랜 사회적 투쟁을 통해 경계를 넓혀온 인간의 발명품이었다고 전제하고 토론이 이루어졌다. 따라서 담론의 범위는 사회 전반에 걸치게 되었다. 중심은 성을 설명하는 가장 포괄적인 개념인 ‘섹슈얼리티’일지언정 경제, 노동, 교육, 민주주의 등 다양한 분야와 연계된 자료를 토대로 우리 사회가 가지는 불평등을 조명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주제는 <대학과 성>이라는 주제였다. 교수님은 <헌팅 그라운드>라는 다큐를 통해 미국 명문대학들의 모임인 아이비 리그에서 조차 성폭행과 성추행 등을 포함한 성폭력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학교 측에서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특히 우리 학교에도 이를 전담하는 부서가 있긴 하지만 실제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학교사회가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셨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상당히 파격적이지만 그날 강의의 하이라이트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생생한 의견이었다. 주로 여학우들의 의견이 다수를 이루면서 남성의 입장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곳에 있던 불평등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나의 예시로 2017년 시중에 판매중인 일부 생리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에 학교와 학생회 측에 교내에서 판매중인 생리대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청하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학교 측에서 이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특히 성소수자, 퀴어 문제를 다룰 때 더욱 강렬해졌다. 퀴어 문제를 다루면서 가장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생각보다 많은 성소수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를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강의에서 이루어진 토론 중에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힌 한 학우는 일전에 아주대 내 성소수자들의 모임을 홍보하는 게시물이 훼손된 일을 거론하며 아직 우리 사회에 혐오의 문화가 남아있는 것 같아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심리학도 입장에서 이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다양성에 대해 깊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심리학에서는 소수자들이 사회구성원 가운데 차지하는 비율을 중시하는데, 너무 낮은 비율일 경우 다수에 의한 차별이 매우 당연시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수자들이 사회의 주류(Main Stream)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는 방법을 통해 차별을 줄이고자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대입 전형 가운데 농어촌 전형, 다자녀 전형 등이다. 따라서 사회의 다양성을 유지하면서도 개개인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심리학은 이들을 배려할 것을 지향한다. 하지만 실제 사회에서 이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그리고 이론과 현실의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 심리학이 나아가야하는 방향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할 기회가 적었다. 솔직히 명쾌한 해결책을 얻지는 못했고 오히려 심리학도로서 많은 것을 배워야겠다는 점만 다시 확인할 수 있었던 질문들이었지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우리 사회가 한 차원 더 높은 담론을 나누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개인의 정체성을 둘러싼 감정의 격돌이라는 점에서 젠더 갈등은 쉽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문제도 아니고 그럴 수 도 없다. 2016년 개봉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 가운데 누가 더 ‘영웅’이고 누가 더 ‘악당’인지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해보자. 영화 속에서 이루어진 갈등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어벤져스’활동에 제약을 두는 합의안에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70년 만에 깨어난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의 절친인 ‘버키’가 누명을 쓰고 쫓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를 보호하고자 투쟁하는 것이며 아이언맨은 ‘버키’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살인자이기 때문에 복수를 위해 투쟁했다. 즉 이들의 갈등은 ‘영웅’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이성적인 대립이 아니다. 자신의 유일한 친구를 지키려는 스티브 로저스와 부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지 못했던 토니 스타크 간의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대립이었다. 섹스(생물학적 성별)와 젠더(사회문화적 성별)를 포함해 성과 관련된 개념을 포괄하는 가장 넓은 개념인 ‘섹슈얼리티’를 둘러싼 오늘날의 갈등도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로 대립하기 때문에 양보와 타협이 쉽지 않은 것이다. 마정윤 교수님의 <섹슈얼리티와 한국사회>는 이런 갈등의 실체를 파악하고 내가 이에 대해 깊게 고민하는 기회를 주었다. 
   이 수업은 자기 생각이 없으면 아주 곤란한 강의였다. 기본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사후피임약에 대한 논의였다. 사후피임약을 일반의약품을 전환하는데 찬성하는 측은 여성의 자기신체결정권을 강력하게 주장한 반면, 반대 측은 약물의 부작용이나 오남용이 오히려 여성의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에 의사의 처방이 필요하다며 대립했다. 물론 강의 특성상 찬성 측에 유리한 배경지식이 더 많이 제공되었기는 하지만 주 1회 연강 강의에서 2-3주마다 토론이 약 20분 가량 이어진 것은 그 자체로 본 강의가 가지는 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런 토론은 페미니즘에 대해서 논할 때 그 효과를 최대한으로 나타내었다. 사회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는 만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많이 경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혐오와 무관하지 않은 현재 상황을 고려하면 말글대로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자신의 말을 표현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혹자는 대학사회에서 토론과 담론이 사라졌다고 한탄한다. 이상을 나눌 시간과 여유가 없다보니 당장 눈앞에 있는 현실에만 집중한다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을 위해 두 가지 이유로 이 강의를 추천하고자 한다. 첫째 강의를 들으면서 토론을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이 강의는 최고의 선택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지 않으면 수업이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교수도, 다른 학생들도 의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이는 실제 성적으로 환산된다. 보고서와 서술형 시험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론에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 그리고 자의반 타의반의 심정으로라도 토론에 참여하고 싶은 학생들까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두 번째로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수업을 듣고 싶은 학생들에게도 본 강의를 추천한다. 좋든 싫든, 긍정하든 부정하든 젠더 갈등은 우리 세대가 안고 가는 시대적 숙제 중에 하나이다. 게다가 이 숙제는 생각보다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인권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다양성과 조화에 대해서 공부한 경험의 유무가 큰 차이를 가지게 된다. 우리 세대가 만나야하는 수많은 개인들은 저마다의 개성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섣불리 자신의 시선에서 타인을 평가하는 실수를 범한다. 이는 좁게는 개인의 인간관계에 불협화음을 가져오고, 넓게는 사회갈등이 심화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본 강의는 교내에서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개개인의 차이가 차별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알려준다. 따라서 사회생활에서 실수를 방지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지혜를 얻고 싶은 이들에게도 좋은 강의가 될 것이다.
  조지 RR 마틴의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에서는 역사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과거는 잉크로 쓰여지고 현재는 피로 쓰여진다.” 과거는 담백하게 기록될지 언정 현재는 갈등과 희생을 통해 진보한다는 뜻이다. 그 말대로 우리 사회는 알게 모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 덕분에 산업화 시대는 사회문화, 정치적으로 종언을 맞이하고 민주화 시대는 1987년 이후 다시 그 가치의 소중함을 증명했다. 우리가 맞이할 다양성과 개성, 존중의 사회로 가는 길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 길을 가는데 필요한 피를 덜어내고 싶다면, 시민으로서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면 <섹슈얼리티와 한국사회>를 한번 수강해보는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