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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듣고 싶은 명강의

2018학년도_입상_[고전학 입문]_조하연 교수

  • 사충원
  • 2019-03-05
  • 4677
제목: 학생의 지적호기심을 자극하고 학생이 계속해서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강의, 고전문학입문  

 대학이 이전의 교육 기관과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 달라야 하는 것은 또 무엇일까. 대학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이 질문을 아우르는 답은 바로 ‘학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학문을 배울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분야를 심층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생들은 입학할 때 ‘학과’를 정한다. 앞의 두 문장을 연결 지어서 말하자면 자신이 알고 싶은 분야의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정도로 공부할 수 있어야하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는 것이다.
 내가 입시 원서를 넣을 때 국어국문학과를 택한 이유로 그렇다. 간단하게 말해서 국어를, 그중에서도 고전문학을 심화해서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대학교에서 들어가서 고전문학 분야를 심화 전공하겠다는 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1학기 때는 ‘한국고전문학강독’ 수업을 들었다. ‘강독’이라는 한계점 때문인지 수업은 고전문학 작품들을 읽고 비평하는 데에만 초점을 두어 진행되었다. 학문적으로 좀 더 깊이 파고든 수업이 아니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2학기에는 고전문학의 기틀을 세울 수 있는 강의를 고르고 싶었다. 그래서 ‘고전문학입문’ 강의를 선택하게 되었다. 강의명부터가 학문적인 부분을 더 다룰 것만 같았다. 내가 예상한 대로 이 강의는 이전 강의보다는 더 학문적인 부분을 다뤘고 내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주었다.
 강의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떠한 부분이 내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켰는지 말해보고 싶다. 사실 이 강의는 시작부터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였다. 교수님께서는 ‘이 강의를 통해 무엇을 알고 싶은지’에 대해서 A4용지 1장 분량으로 적어오라고 하셨다. 덕분에 나는 기존의 중등교육에서 정해진 해설을 읽고 받아들이는 것으로는 충족되지 못했던 나의 지적 호기심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었다. 이전의 교육과정들을 통해 받아들이는 작품들이 전부인 것일까, 아니면 수많은 작품들 중에서 엄선된 것을 배우는 것일까. 작자 미상의 작품들은 어떻게 발견되는 것일까. 작품들은 어느 서적에 쓰여있는 것일까. 고전문학 작품들이 당대에 가졌던 파급력은 얼마나 되었을까. 현재까지도 이러한 작품들이 가지는 영향력이 무엇일까. 내가 과제로 적어서 낸 이러한 많은 물음들은 수업을 통해 대부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강의는 ‘왜’라는 질문으로 모든 고전문학 작품들을 바라보았다. 먼저, 작품을 해석하는 세 가지 시선(작가,현실,독자) 중에서 작가의 시점을 선택하여 ‘왜 이 작가가 이러한 작품을 쓰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단지 작품의 존재 사실이나 학문적 용어를 외우는 것이 중요했던 중등교육과는 많이 다른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중등교육에서는 ‘최초의 한문소설’인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중요한 부분이었다면, 이 강의에서는 ‘왜’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쓰게 되었을까가 중요한 논점이 되었다. 
 당대 문학을 창작한 자들의 대부분이 자신만의 사상을 가지고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작품을 썼기 때문에 작가를 중심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읽는 것은 작품을 이해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수동적으로 학문적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려고 하다 보니 작품의 어떠한 부분이 주목할 만한지를 생각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다음으로 ‘이 작품을 왜 현대에서 아직까지 읽고 배우는 것일까’를 해결하기 위한 수업도 진행되었다. 중등과정 및 대학 과정에서 배우는 것들 외에도 수많은 고전문학 작품들이 있다. 그렇게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왜 하필 우리는 엄선된 일부의 작품들만 계속해서 배우는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적절한 예시는 「정읍사」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정읍사가 물론 유일한 백제의 노래라는 학문적 중요성을 가지지만 이 작품이 가진 돌아오지 않는 임을 기다리는 마음은 현대에서도 통하는 감정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고전문학 작품이 당대의 고유한 풍습을 반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 적용되는 보편성까지도 지녔기 때문에 현대인인 우리가 계속해서 배우고 또 읽는다는 점을 강의를 통해 배우게 되었다. 한국의 고전문학이 현대에 와서는 어떠한 가치를 지니는 지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강의를 통해 ‘고전’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작품을 더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강의는 수업으로 다루는 것 외에도 과제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왜’라는 질문을 던지도록 만든다. 모든 과제 및 시험이 해당 작품을 읽고 왜 그렇게 느꼈는지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것이었다. ‘나는 황진이 시조 중 『청구영언』이 가장 인상 깊었다. 다른 시조들에 비해 독특했기 때문이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점이 어떻게 독특했는지, 다른 시조들은 어떠한데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은 무엇인지 등으로 한 단계 더 심층적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과제를 하기 위해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생각했고 또 생각해야했다.    
 이 강의가 가진 특색을 한 가지 더 하자면 물음에 대한 답을 표현하는 법 또한 배운다는 것이다. ‘저는 이 작품이 현대에 끼치는 영향이 이러한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써서 과제를 제출하면 교수님과 제출한 과제를 놓고 면담을 한다. 다른 강의들은 오로지 나의 생각만 묻지, 했던 생각 중 어떤 부분은 어떻게 다르게 볼 수 있는지는 안 가르쳐주던데, 이 강의는 교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되짚고, 더 나아가서 내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해주어서 더 좋았다. 또한 교수님께서 해주신 ‘자신의 주장을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체계를 먼저 세워야 한다, 글이라는 표현도구가 생각을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을 막도록 단어 사용에 유의하여야한다’ 등의 말씀은 학문적 글쓰기의 기초가 되는 틀을 잡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마무리를 지으며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이 고전문학입문 강의는 진짜 대학 강의다운 강의였다. 학생들이 알고자 부분을 먼저 파악하려 했고, 계속해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했으며 학생의 생각을 파헤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같이 깊이 파내려가려고 했다. 앞서 도입부에서 밝혔던 내가 꿈꾸던 대학 강의에 완전히 부합하는 강의였다. 전공 강의는 ‘전공’답게 주입식 교육만 받아왔던 학생들이 자신이 선택한 분야를 더 심층적으로 학습하되 알고 싶은 지적 호기심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맥락에서 나에게는 이 강의가 다시 듣고 싶은 명강의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덧붙여서 내가 그동안 걸어왔던 학문의 길에 이 고전문학입문 강의가 새로운 지표가 되지 않았나 싶다. 다른 국어국문학 전공 강의들을 많이 듣고 또 배우고 나서, 졸업을 직전에 앞두고 이 강의를 다시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또 얼마나 많은 지적 호기심들을 충족하고 마무리할 수 있을까.